지방 국립대 출신인 이모(27)씨도 처음에는 대기업 입사가 목표였다. 여기저기 원서를 넣고, 기차 타고 올라와 면접도 봤지만, ‘역시 공무원 시험이 최고’라는 생각만 강해질 뿐이었다. 2년 동안 공무원 수험서와 씨름 했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결국 취업 실패 3년 만에 이씨가 선택한 것은 PC방 창업. 그러나 1년 여 지난 지금 그는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의 중위권 대학 경영학과를 나온 김모(30)씨는 처음부터 장사가 목표였다. ‘원하는 기업에 못 갈 바에야 장사가 낫다’고 생각했다. 2003년 부모한테 받은 7,000만원으로 분당 서현역 근처에 치킨가게를 열었지만, 1년 만에 절반을 날렸다.
이듬해 업종을 바꿔 분당 오리역 근처에 주점을 열었다. 월 1,000만원의 매출을 올릴 때도 있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손에 남은 2,000여 만원을 들고 시작한 청소대행업체 역시 좌절만 안겨주었다. 그는 지금 시골 부모님의 농장 일을 돕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씨처럼 취업에 실패한 사람도 있고, 김씨처럼 처음부터 취업을 포기하고 장사로 돈 벌겠다고 나선 사람, 눈높이 낮춰 취업했다가 뛰쳐나온 초보 직장인도 있다. 동기도 다양하고 사연도 구구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현재 20, 30대 자영업 종사자 수는 163만5,000명. 이 연령대 취업자의 16.3%가 도소매업, 음식업 등 자영업으로 먹고 살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 종사자 수는 20대 29만8,000명에서 30대 133만7,000명으로 급증하는데, 전문가들은 구직 활동에 실패한 20대가 30대 들어서 자영업에서 대안을 찾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이 같은 창업 열기는 외환위기 직후 일었던 벤처 창업 붐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상헌 창업경영연구소장은 “벤처 붐 때는 ‘제2의 안철수’가 목표였지만, 지금은 프랜차이즈나 대형 외식업소 사장님이 목표”라며 “요즘 대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의 창업 아이템은 외식, 커피전문점, 인터넷 쇼핑몰, 옷가게, 택배 등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영업”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내 사업’이 아니라 ‘내 장사’를 해서 돈 벌겠다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목표라는 것이다. 실제 분식 프랜차이즈인 ‘김가네’의 경우 총 가맹점수 380개 가운데 40%를 20~30대가 경영하고 있다.
최근 젊은이들의 자영업 열기는 오히려 외환위기 직후 퇴출된 실직자들이 퇴직금을 들고 뛰어든 창업 행렬과 닮았다는 지적이 많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직후 정부의 창업지원금을 받고 자영업 시장에 뛰어든 퇴직자들이 실패를 거듭하며 영세한 업종을 전전하다 결국 저임 도시근로자나 도시빈민으로 추락한 사태가 되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 시장의 포화와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중산층 붕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렇다고 자영업에 몰리는 젊은이들을 뜯어 말릴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과 같은 저성장 구조에서 이들에게 계속 일자리만 찾아보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 “자영업을 하더라도 기존의 자영업자보다 좀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서 자영업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꿈은 더 작아지고 있어도, 최소한 이들의 미래가 더 불안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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