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글ㆍ염성순 그림/뿔 발행ㆍ172쪽ㆍ1만2,000원
이상(1910~1937)과 서정주(1915~2000). 한국 현대시사에 각각 근대성과 토속성이라는 색채를 강렬하게 아로새긴 시인들이다. 두 시인의 작품이 '몸'이라는 코드로 한 자리에서 만났다. 해석자는 등단작 '꼽추'(1989)에서부터 놀랄만한 관찰력으로 '몸'과 '생명체'를 꿰뚫어보고 있는 그들의 후배 시인 김기택(50)씨다.
저자는 시론집 <시와 몸과 그림> 에서 인간의 몸을 눈, 코, 입, 팔다리, 머리, 뼈와 같은 '보이는 몸'과 정서, 마음, 욕망, 영혼과 같은 '보이지 않는 몸'으로 대별한다. 그에 따르면 시인은 "사람, 동물, 꽃, 돌, 산, 강 따위의 보이는 사물에 보이지 않는 몸을 빙의시키거나 변용시켜 보이는 몸으로 드러내는"자다. 시와>
저자에 따르면 이상의 시에서 '몸'은 절단된 몸, 기형적인 몸, 사물화된 몸, 병든 몸이다. 그것은 '내팔이면도칼을 든채로끈어져떨어젓다'('시 제13호')거나 '나의 폐가 맹장염을 앓다'('작품 제1번')와 같은 구절로 도출된다. 폐결핵이라는 육체적 질병과, 유교적 봉건의식과 20세기적 문명의 불안한 동거로 인한 정신적 위기와 싸워야했던 이상은 이처럼 보이는 몸과 보이지 않는 몸에서 동시적으로 주어지는 고통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시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것은 항용 정신을 신성시하는 태도와 육체에 대한 경멸로 나타나곤 했다.
이상이 보이는 몸과 보이지 않는 몸의 갈등에서 고투한 시인이라면, 서정주는 "어느 시인보다 보이지 않는 몸을 보이는 몸처럼 자유자재로 능란하게 이용할 줄 알았던" 시인이다. 저자는 서정주의 시적 여정은 땅의 세계에서 하늘의 세계로 상승하는 과정이면서 보이는 몸에서 보이지 않는 몸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땅의 세계에 속한 보이는 몸은 '벙어리'('벽') 이거나 '문둥이'('문둥이') 혹은 '징그러운 몸뚱아리'('화사') 등인데 그것은 늘 하늘의 세계에 속한 보이지 않는 몸을 지향한다. 이는 보이는 몸과 보이지 않는 몸인 혼신들과의 영통, 혼교로만 가능하다. 보이는 몸이 없는 혼신은 꽃, 나무, 바위, 바람 등의 몸을 입고서야 시인과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은 서정주의 시에서 강한 상징성을 가진 언어들이다.
김기택 시인은 "일제 강점기에 시작 활동을 한 이상과 서정주는 가혹하고 부조리한 삶의 조건 앞에서 억압당한 현실을 몸으로 느끼고, 현실에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를 몸으로 느끼려 했던 시인들"이라며 "그들은 결국 같은 지점에 도달하여 병들거나 현실에 갖힌 몸을 시를 통해 해방시키고 자유를 체험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책에는 이상과 서정주의 시에서 느낀 이미지를 소재로 한 화가 염성순씨의 그림 30여점도 실려있다. 10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와룡동 갤러리 눈에서 원화를 볼 수 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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