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프랑스와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1886년. 오랫동안 쇄국의 빗장을 지른 채 문호를 개방하지 않던 조선왕조가 서방국가로는 프랑스와 처음으로 수호조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이보다 20년 전인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 갑곶진에 상륙한 프랑스군 600여 명은 외규장각에서 귀중한 문화유산을 무더기로 강탈해갔다. 파리의 프랑스국립도서관 지하실에는 이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174종 296책이 보관된 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31종은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다.
이들 외규장각 도서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78년 재불 사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서였다. 처음에는 중국 문서로 분류되어 한국의 고서인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한불 양국이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협상을 시작한 것은 1991년. 이후 17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진전이 없다.
프랑스는 문화대국을 자처하면서도 남의 나라 문화재에 대해 원주인이 돌려달라고 정당한 요구를 하는 데도 반환하지 않겠다고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자국의 문화재보호법을 내세워'상당한 가치의 문화재와 맞교환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강도가 빼앗아간 보물을 돌려줄 테니 같은 값어치의 보물과 맞바꾸자고 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일이다.
'문화재 약탈이 범죄행위'라는 사실은 1954년에 발효된 헤이그 조약에서 전 세계적으로 합의된 사항이다. 더구나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게 약탈당했던 수많은 문화재를 끈질긴 요구 끝에 1994년에 대부분 돌려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계속해서 미루는 것은 프랑스가 우리나라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최근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해 민간단체인 문화연대가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본격적인 소송에 나섰다. 문화연대는 이 소송을 위해 국민성금 3억 4,000만원을 모금했다고 한다.
문화연대는 지난해 1월 프랑스 거주 김중호 변호사 등을 통해 파리 행정법원에 외규장각 도서반환 1심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1년 2개월 만인 지난 3월 파리 행정법원이'국유재산은 반환할 수 없다'는 내용의 프랑스 문화부 의견서를 보내오자 그 의견서를 반박하는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김중호 변호사는 "소송의 핵심은 외규장각 도서의 '비국유화 요청'과 도서반환 요청이다"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문화재는 국유재산으로 분류돼 반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규장각 도서의 비국유화를 함께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헤이그 조약뿐 아니라 유네스코의 '도난 또는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 반환에 관한 협약'등 각종 국제규약에서도 문화재 약탈과 훼손은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우리의 반환 요청은 법적 정당성이 충분하다. 특히 병인양요 때의 외규장각 도서강탈은 프랑스 정부의 승인없이 일선부대와 일부 장교가 자체 판단에 따라 저지른 야만적 약탈행위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지난 정권처럼 '유연성 있게 대처'한다느니 하는 안이한 소리로 적당히 덮어두고 세월만 보낼 일이 아니다. 각계 전문가로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주한 프랑스대사를 매일같이 외교부로 불러 반환을 독촉해야 한다.
고위 공직자가 프랑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이 문제를 거론해야 하고, 문화관광부 장관도 프랑스로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도 프랑스가 들은 척 않고 오만한 자세로 일관한다면 그때 가서는 보다 강경한 방안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일시적으로 전시와 공연 등 양국 간 문화교류를 중단할 수도 있고 나아가서는 범국민적으로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프랑스의 잘못을 깨우쳐주고, 우리나라가 문화주권국임을 세계에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황원갑 소설가 · 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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