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건축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건축그룹 '공간' 사옥.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하고 머물렀던 이곳은 건축 뿐 아니라 문화예술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개관 이듬해인 1972년 이 건물 지하에 문을 연 공간화랑과 5년 후 들어선 소극장 공간사랑은 새롭고 실험적인 문화예술이 발 디딜 공간을 제공하며 수많은 젊은 예술인들을 배출했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의 하나가 된 사물놀이가 김덕수 김용배 이광수 최종실 네 젊은이에 의해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것도, '병신춤'의 춤꾼 공옥진이 세상에 나온 것도, 김금화의 굿이 무대화된 것도 공간사랑을 통해서였다.
공간화랑 역시 당대 화단의 주요 작가들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며 미술의 흐름을 선도했다. 상업적 가치보다 예술성과 실험정신을 우선하면서 회화 뿐 아니라 조각, 판화, 사진, 민화 등 당시로서는 보기 쉽지 않았던 장르까지 아울렀다.
박고석 장욱진 윤형근 하종현 등이 공간화랑을 거치며 명성을 키웠다. 그러나 김수근의 사망과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서서히 '공간'에서의 공연과 전시는 줄어들었고, 1990년대 들면서부터는 아예 맥이 끊겼다.
그렇게 잊혀졌던 '공간'의 두 예술공간 중 공간화랑이 10월 2일부터 다시 관객을 맞는다. 1992년 이후 정기적인 전시가 없었다고 하니 16년 만의 재개관이다. 과거의 정체성을 이어가면서 지금 시대에 맞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겠다는 의지를 내세웠다.
'담론의 구축'이라는 제목이 붙은 재개관 프로젝트의 첫번째는 설치작가 박기원의 개인전 '마찰'(11월 16일까지). 실처럼 가느다란 금속이 불규칙하게 얽힌 채로 전시장 바닥에 깔린다.
예전의 벽돌 벽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화랑 자체가 작품의 일부를 이룬다. 이후 설치작가 김승영, 안규철 등의 전시가 예정돼 있다.
박성태 공간사 상무는 "문화가 지나치게 거대해지면서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전시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면서 "1970년대 화랑에 이어 소극장을 열었듯이 공간사랑의 재개관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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