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로 시작하는 황동규(70) 시인의 국민적 애송시 '즐거운 편지'. 이 시는 1958년 그의 문단 데뷔작이다.
올해로 등단 50년이 되는 황동규 시인이 산문집 <삶의 향기 몇점> (휴먼&북스 발행)을 펴냈다. 삶의>
대학(서울대 영문과) 정년퇴임 무렵부터 써온 수필 35편을 묶은 이 산문집에는 명동의 주점 '은성'에서 김수영과 막걸리잔을 비워가며 문학논쟁을 벌이던 젊은날의 기억부터, 지난 봄 세상을 뜬 친구인 소설가 홍성원의 무덤을 찾아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한 상념까지, 이제 스스로 "시의 의무에서 해방"됐다고 말하는 노시인이 풀어내는 반세기의 예술인생이 담겨있다. 그를 만났다.
- 올해 등단 50년을 맞았습니다. 특별한 소회가 있으신지요.
"나는 가끔 생일도 잊어버립니다. 출판기념회도 평생 꼭 한 번 했는데, 이번도 마찬가지예요. 이태 전 '창작과 비평'에 시를 발표하고 올해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는 50년을 기념했고, 산문도 이 책으로 50년을 기념한 셈이 됐네요. 그래도 작품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 것도 없었으면 물론 조금 섭섭하긴 했겠지만…"
- 새 시집도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체력도 기억력도 떨어졌지만 이상하게 상상력은 더 활발해졌어요. 밤에 잠이 깨 시상이 떠오르면 옛날 같으면 아침에 썼을 텐데, 요즘은 일어나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요. 한 20분 지나면 머리가 예민해져서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룹니다.
아마 7,8년 동안 내내 시하고 대화를 해와서 그런게 아닐까 해요. 보통 사람이 70을 느낀다면 저는 90을 느낍니다. 그게 상상력이 되겠지요. 모든게 조금씩 사그라지면 편한데…. 그것이 시를 쓰는 데는 도움이 돼도 사실 사는 데 좀 괴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 시하고 '대화'한다는 건 어떤 것입니까?
"시로부터 배우기도 하고 시를 배워주기도 하는 것이지요. 저는 눈에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비문증(飛蚊症)이 있는데 어느 가을, 황혼 속에 뭐든지 녹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아요. 하지만 눈물이 나올 만큼 눈을 감았다 떠도 모기가 안 없어지더라구요.
그때 '날건 말건!'이라는 싯구가 떠올랐고 그 다음부터 '날건 말건!'이라는 말을 썼더니 효과가 있더라구요. '모기야 날건 말건 그까짓 게 사는 데 치명적이지는 않지 않느냐'라고 시가 나에게 타이른 것이지요."
- 산문집에서 '아직도 질문하는 존재이고 싶고, 삶이 어떤 것이라고 그럴듯한 문장으로 완결짓는 일은 내게 아직 이른 것 같다'고 쓰셨습니다. 칠순을 넘겼다면 인생에 대해 대답하시고 싶은 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대가들은 자꾸만 답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답은 어떤 의미에서 일률적이고 상식적입니다. 질문은 그렇지 않아요. 자기 고민이 들어있고, 세계를 이해하려는 열망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내 시나 산문에는 질문이 많습니다. 알려고 애쓰는 것을 형상화하려는 것이 질문이지요.
질문은 논리학적으로 보면 미완의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삶'이라는게 어디 있겠어요. 미완이 생의 실체이지요. 진짜 예술가는 '질문하다 죽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 역시 올해로 등단 50년을 맞은 고은 선생님은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 되겠다고 하시더군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고은 선생과 다른 것이, 나는 다시 태어나면 시인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꼭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태어날지 안 태어날지도 모르는데… 허허허. 좀더 오래살려고 바둥거릴 것 같지도 않고."
- 하루하루의 현실적 삶을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내 시도 삶의 현장에서 출발한 것이지, 머릿속으로 만든 게 아닙니다. 거기서 상상력하고 만나서 폭발도 하고 섬광도 튀고. 하여튼 나는 머릿속으로 만드는 산문이나 시를 좋아하지 않아요. 초월하게 되면 시를 쓸 필요도, 소설을 쓸 필요도 없지. 넘어가버리면 할 말이 없어지니까."
- 많은 독자들은 '즐거운 편지'를 선생님의 대표작으로 꼽습니다. 외람되지만 선생님께서 스스로 대표작을 뽑아주신다면요.
"없어요. 그건 비평가들이 할 일이에요. 시인이나 소설가가 비평가, 독자들하고 다른게 결과하고 과정을 다 봐야 하기 때문이지요. 쓰면서 자기가 얻는 게 있으니까. 비평가들은 '안성 석남사의 이끼'(2006) '무굴일기'(2007) 같이 최근 몇 년 동안의 내 시가 더 정렬적이고 예리해졌고 합디다. 나는 내년 봄쯤 나올 시집이 지금까지 나온 시집 중 가장 정열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무살 나이에 등단, 50년 동안 700편이 넘는 시를 발표한 황동규 시인. '초월, 죽음 후의 삶, 관조' 대신 '오늘, 여기, 열정적 삶'을 힘주어 말하며 자리를 杉?그를 보며 "언제나 깨어있는 정신이야말로 황동규 시의 원리"라고 한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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