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우리는 북한의 핵 불능화 작업 중단과 핵 시설 복구 움직임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로 한반도 안보정세가 요동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왔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요원에게 핵시설 봉인 제거를 요청하여 대미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동태는 계속 파악되지 않고 있어 불안감은 지속되고 있다.
궁금한 김정일 위원장의 동태
반면 뜻밖의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우선 북한이 김정일을 정점으로 하는 유일 지배체제이므로 그만 없어지면 주민들이 해방되리라고 낙관해왔지만, 유고 상황을 진지하게 상정해 본 결과 권력 공백으로 북한 내 다양한 급변사태가 발생할 수 있고, 강경한 군부 지배체제가 등장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6자회담이 다시 제 궤도를 찾아 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으려면, 남북관계가 호혜적 경협 증진과 함께 정상화되려면 그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하니, 그의 건강이 조속히 회복되기를 바라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북한이 핵 시설 복구 동향을 보여도 효과적 대처방안이 없음을 보았고, 북한 통치자의 건강상태 하나를 두고도 10여일 이상 야단법석을 떨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북한의 경제력이 우리의 수십분의 일 정도로 약화되었지만 또 한 차례의 ‘벼랑끝 전술’ 구사에 초강대국 미국이나 대북 경제 지원의 태반을 제공하는 중국조차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도 보았다.
그렇다면 대북 실용정책을 표방해온 우리 정부가 이제라도 내실있는 성과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자존심 경쟁을 접고 실질적인 국익 보호와 증진으로 나가야 한다. 먼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간주하고 6년 동안 정권 교체를 추구해온 부시 행정부도 50만톤의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데 같은 동포인 우리가 체면과 명분을 찾느라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국제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식량 지원은 사실상 인도주의 문제 해결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국군포로·피랍자 송환 및 이산가족 상봉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조속히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남북관계를 북핵 문제 해결과 연계시킨 데서 알 수 있듯이 핵 문제 해결을 대외전략의 제1과제로 삼아왔는데 북한의 핵시설 복구를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북·미 간에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북한의 핵 신고가 성실하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북한이 핵 신고서를 제출하면 미국도 지정 해제에 나선다고 합의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인데, 6자회담에서 합의된 여러 문서 어디에도 검증과정과 지정해제가 연계된다는 기술이 없다. 7월 12일 발표문에 비핵화실무그룹에서 ‘전원 합의로’ 검증체제를 수립한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관용으로 일단 북한을 지정 해제해 주는 것이 순리이다.
북한이 지정 해제된다 하더라도 정치적·상징적 효과는 얻겠지만 핵 실험으로 인한 유엔안보리 제재, 대량 살상무기 확산국으로서의 제재, 공산국가로서의 제재는 계속 받기 때문에 중ㆍ단기적인 경제적 실익은 미미할 것이다. 지정 해제 이후 성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다시 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을 독재 공산국가나 인권 경시국 또는 ‘불량국가’로 간주할 수는 있으나 90년대 이후에는 테러를 지원했다는 확증이 없으므로 테러지원국 낙인은 적당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될 수 있다.
미국을 설득하는 게 실용외교
더구나 지정 연장은 적어도 불능화와 신고까지는 성의를 보인 북한으로 하여금 오기로라도 테러 지원에 나서게 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강경 태도에 대한 미국의 맞대응에 동조하기보다는 미 행정부가 북한에게 명단 해제로 일단 기회를 주어 일탈된 행동을 하는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 미국의 국제적 명성에 걸맞고 핵 문제 해결과정 재개를 위한 발전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설득하는 것이 실용외교에 부합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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