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대기업 임원에서 물러난 A씨. 그 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 등을 합쳐 동원 가능한 자금은 총 10억원. 목 좋은 자리에 호기롭게 7억원을 투자해 고깃집 사장님으로 변신했으나, 이 돈을 모두 날리는 데는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경험 부족 탓이려니 여겨 유명 프렌차이즈 호프집을 차렸지만, 역시 1년 만에 거덜이 났다. 마지막 남은 돈을 긁어 모아 동네 초등학교 인근에 차린 분식점도 파리만 날리다가 문을 닫았다. A씨는 요즘 파출부로 나선 아내의 수입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최근 유행한 프랜차이즈 외식업종을 일찍 시작해 비교적 성공했다는 평가를 들은 한 친구가 전해준 사례이다. 그는 저녁이면 젊은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서울 강남역 부근의 가게를 최근 정리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친구들에게 "3년 동안의 수지를 맞춰보니 겨우 인건비 정도 건졌더라. 자영업은 절대 할 게 못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왜 그럴까. 3~4년 전만 해도 식당 매출의 40% 가량이 순이익이었지만, 지금은 임대료와 식자재비가 많이 올라 100원 어치 팔면 20원 정도 남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세금으로 절반 가까이 토해내야 한다. 두 집 건너 한 집 꼴로 식당과 주점이 난립할 만큼 공급 과잉도 심각하다. 친구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직장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드는 건 망하는 지름길이다. 차라리 한달 수입 200만원을 목표로 대리운전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낫다. 자영업으로 그 동안 번 돈 날리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인생을 마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3년 전 금융회사에서 명예 퇴직한 뒤 1년 이상 프랜차이즈 식당을 알아보다가 결국 포기한 고교 동창은 운이 좋았던 셈이다. 전 재산을 털어 시도한 창업에서 한 번 실패하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다 마음을 바꾼 케이스다.
최근 발표된 국제노동기구(ILO) 자료를 보면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취업자 100명 중 34명 꼴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3배나 된다. 경쟁이 치열한데다 내수경기마저 안 좋다 보니 올 들어 서울시내 음식점 3곳 가운데 1곳이 문을 닫았다. 정규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사람들이 재취업이 안돼 자영업으로 몰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는 자영업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상당수 자영업자는 가게 문을 닫는 순간 극빈층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정부는 수 차례 자영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정책적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정규직 근로자 →퇴직 →자영업 →극빈층으로 가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몰락하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도 당연히 갖춰야 한다.
근본적인 해법은 은퇴 연령을 늦추고, 재취업이 용이한 사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데 직장 퇴출 연령은 낮아지는 것, 위험 부담이 큰 자영업 외에는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 불안정의 근원이다. 은퇴 연령을 늦추려면 공공부문, 대기업 정규직 등 기득권 계층의 양보가 필수적이다.
연공서열 대신 직무수행 능력에 연동되는 임금 체계와 임금피크제 등을 속히 도입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공과 민간부문 간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도록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확보돼야 한다. 실직자에 대한 재취업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게 수십 조원의 감세 정책보다 더 중요하다.
고재학 경제부 차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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