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눈폭풍이 베이스캠프에 몰아쳤다.
18일 긴 여정의 캐러밴을 끝내고 해발 5,360m 쿰부 빙하 위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당도한 '박영석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에 또 한번의 시련이 닥쳤다. 베이스캠프에서 첫날밤을 보내던 19일 새벽 2시, '우르르 쾅쾅' 온 산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눈덩이가 몰아쳤고, 잠시 후 눈사태로 생긴 후폭풍이 또다시 텐트를 덮쳤다.
박영석 대장이 잠자고 있던 본부텐트와 주방텐트는 10여m나 날라갔고, 셰르파와 대원의 텐트 4동이 박살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박 대장 등 전 대원과 셰르파들은 큰 부상없이 안전했다. 에베레스트 등정만도 9번째인 박 대장은 "베이스캠프에서 이런 눈사태는 처음"이라고 했다.
대원들은 서둘러 캠프 복구에 나섰다. 지줏대가 꺾인 텐트는 대나무를 대신 박아 세웠다. 찌그러진 솥과 냄비는 망치로 두들겨 펴야 했다. 새벽의 난리를 겪었던 캠프는 일사천리의 재정비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제자리를 찾았다.
베이스캠프에 함께 둥지를 틀었다가 역시 눈사태를 당했던 이탈리아 원정대와 아이스폴 전문 셰르파 팀 SPCC는 한국팀의 빠른 복구에 놀라워했다.
정비를 마친 대원들은 "등반 전에 더 조심하라는 사가르마타(네팔인이 에베레스트를 부르는 이름) 여신의 경고"이자 "베이스캠프 진입을 환영하는 눈꽃 축제"라며 오히려 의연해졌다.
21일 일요일 아침, 베이스캠프에서는 '라마제(祭)'가 치러졌다. 산의 신에게 산행을 고하는 제의다. 전 대원은 깨끗이 머리를 감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서는 돌로 쌓은 1m 높이의 탑 밑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라마제가 끝나자 맑던 하늘에서 갑자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셰르파들은 "라마제 때 눈이 내리는 건 좋은 징조"라며 "Good Luck"을 외쳐댔다.
이형모 대원은 "아침에 텐트 밖에서 이상한 울음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보통 까마귀의 3배 되는 덩치의 커다란 까마귀 2마리가 날아와 있었다. 아마도 오희준, 이현조 두 형이 우리를 찾아온 것 같다"고 말해 모두를 숙연케 했다. 두 사람은 이전 등반에서 희생된 대원들이다.
라마제가 끝나고 곧장 본격 등정에 나서야 했지만 또 다른 장애물이 원정대를 가로막았다. 등정의 첫 관문인 아이스폴은 '악마의 늪지대'로 불리는 거대한 얼음 계곡.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크레바스(얼음 사이의 틈)가 도처에 숨어있다.
네팔 규정상 SPCC만이 크레바스에 사다리를 설치하고 로프를 연결하는 등 아이스폴의 루트 관리를 할 수 있다. 다른 원정대는 이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고 통과해야 한다.
SPCC측은 장비 수송이 늦고 인력이 부족해 10월 초에나 아이스폴 루트가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또 10일 이상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것. 박 대장은 "식량만 축낼 수 없다"며 "우리 대원과 셰르파들이 돕고 장비를 빌려줄 테니 작업을 서두르자"고 제안, 동의를 얻어냈다.
23일 새벽 진재창 부대장과 송준교, 김영미 대원 3명이 셰르파들과 함께 어두컴컴한 쿰부 빙하를 걸어 아이스폴 공략 지원에 나섰다. 이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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