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걷어붙일 것인가, 팔장을 낄 것인가.
한나라당이 중ㆍ고교 역사교과서 개정 등을 계기로 서서히 달아오르는 보수ㆍ진보 진영 간 이념 전쟁의 장(場)을 두고 목하 고민 중이다. 교과서 문제 외에도 종합부동산세 개편,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사학법 개정, 대북 관계 재검토 등 논쟁 거리는 줄 지어 서 있다. 10년 만에 이뤄진 정권 교체의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이 얼마 전"이번 정기국회에선 좌파 법안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홍준표 원내대표)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이념 전쟁은 정해진 수순 같아 보였다. 팔 걷고 한번 해 보자는 기세였다.
하지만 국민 여론이 썩 좋지 않은 게 문제다. 당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해 보니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데 지나치게 이념 갈등이 부각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거부감이 확연했다"고 말했다.
4년 전 열린우리당은 훌륭한 반면교사다. 당시 집권 여당이 민심과 멀어지는 데는 '4대 입법'으로 상징되는 과도한 이념 논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일단 걷어붙인 팔을 내렸다. 한발 뒤로 빠질 태세다.
21일 교과서 개정과 관련,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언론이 "한나라당이 교과위원회를 구성, 교과과정 전반을 재검토하고 개편하는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즉각 부인하는 보도 자료를 냈다. 교육 문제를 담당하는 나경원 6정조위원장은 당사로 달려와 "전면 개편 요구는 공식적으로 검토된 적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22일 한걸음 더 나갔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역사적 관점이 바뀌어선 안 된다"며 "역사적 관점은 객관성이 있어야 하고 학자들 의견도 충분히 수렴한 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과서 문제가 당의 개입으로 정치적 논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당이 이념전의 전위대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 관계자는 "지금 국민적 여망인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하는 상황인데 그러자면 야당과의 협조가 우선"이라며 "너무 색깔만 밝히다가는 될 일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종부세 개편 문제를 놓고도 한나라당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다.
한나라당으로선 종부세 완화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지 않은 눈치다. 정책 발표 수순을 보면 드러난다. 당정협의를 거쳐 사실상 여권의 단일한 의견을 내 놓았던 이전과 달리 종부세는'정부안 발표-> 의원총회에서의 검토-> 당론 결정'의 수순을 밟을 계획이다.
정부가 발표하면 이후 여론 동향을 본 뒤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겠다는 얘기다. 때문에 여권 일각에선 "당이 면피만 하려고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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