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듣고 종합하는 자가 세상을 얻는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듣고 종합하는 자가 세상을 얻는다

입력
2008.09.24 00:14
0 0

언론이 사회변혁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정치인들이야 그럴 법 하지만 고매한 철학자 가운데도 그런 이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철학자로 제임스 밀(James Mill)을 꼽을 수 있다.

밀은 영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원했다. 변혁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론의 자유가 필요했다. 그가 원한 것은 정부에 대해 무력이나 폭력으로 대항할 것을 촉구하는 것을 제외한 거의 절대적인 자유였다. 그는 폭력 대신에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무기로 삼았다. 폭력이나 무력을 선동하지는 않았지만 정부에 대해 금방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처럼 협박하곤 했다.

영국 철학자 J S 밀의 경우

밀을 추종한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민중이 간단히 결심만 하면 들고 일어날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다고 윽박지르며 정부에 변혁을 촉구했다. 그들의 협박은 곧잘 효과를 보았다. 수증기가 일정한 조건을 갖추기만 하면 기차를 움직일 만큼 폭발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목격한 시대에, 민심의 폭발을 예고하는 것은 분명히 실감 나는 협박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밀의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아버지를 따르지 않았다. 존은 서로 다른 것에서 좋은 점을 취하여 통합하는 철학을 건설하고 싶어 했다. 그에 따르면 사물이나 사건에는 대립되는 측면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는 사물이나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런 대립되는 측면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부분진리(partial truth)야말로 진리의 한 부분일 따름이라고 여겼다. 부분들을 종합해야 비로소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사고(思考)의 출발점이었다.

이런 종합적 사고에 대한 존 스튜어트 밀의 강조는 미국 언론으로 하여금 객관주의를 추구하게 하는 철학적 바탕이 되었다. 미국 언론인들은 자기 주관이 아닌, 제3자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기사를 써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할 때 독자가 비로소 사물의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사회가 통합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그늘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는 예도 많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한계를 훌쩍 뛰어 넘는 예도 적지 않다. 물론 제임스 밀과 존 스튜어트 밀 부자의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 언론을 정부에 대한 협박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한 아버지 밀에 이어, 언론에 대해 사물의 모든 측면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것을 강조한 아들 밀이 나왔기에 오늘날 서구 언론은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도구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아들 밀에게 감동하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수준을 단순히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아버지의 사고를 껴안음으로써 아버지를 초극했다. 아들 밀은 아버지를 의식한 듯, 진리의 한 쪽만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 주장을 도외시하거나 무의미한 것처럼 비하하는 것은 그 반쪽짜리 진리마저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군가가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의 주장이 지니고 있는 진리에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진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반쪽의 진리나마 열린 마음으로 수용해야 언젠가 다른 반쪽의 진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우리 언론은 왜 그리 못하나

지금 새삼 밀 부자를 돌아보는 소이연(所以然)은 무엇인가? 어느 언론이 아버지 밀 편에 설 것인가, 아들 밀 편에 설 것인가는 자유다. 단지 분명한 것은 우리 언론이 되도록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살피고자 한다면, 아니, 진보주의자의 견해를 보수언론이 귀담아 듣고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진보언론이 귀를 기울이기만 하더라도, 지금의 저널리즘 위기를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듣는 자, 듣고 종합하는 자에게 내일이 있을 것이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