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함께 우리 사회 모든 시스템의 지향점은 '효율'로 맞춰졌다. 성장을 바라는 경제적 욕망은 실용이라는 명분 아래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뭉갤 만큼 강렬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은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 성장률 하락과 금융위기 재발이라는 역설을 낳았다. 금융을 수단으로 새로운 패권질서를 꿈꾸던 미국도 메이저 투자은행이 줄도산하며 휘청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관계라는 묵은 주제에 새로운 접근 코드를 제시한다.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되레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최근 발행된 계간 '비평'(통권 20호)은 이 문제를 천착한 '시장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특집으로 다뤘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책사조로서 신자유주의의 전성기는 이미 지났다"고 단언한다. 그는 국내외 통계 자료를 인용 '세계화 시대에는 불가피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대다수 유럽국가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성장률이 복지국가의 전성기에 비해 오히려 낮았다.
또 "복지지출 확대가 양극화의 원인"(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라는 현 정부의 인식을 꼬집으며 "경제개방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세계화가 많이 된 나라일수록, 사회지출이 높다"고 강조한다.
그는 보수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는 세월 동안 정말 잃어버린 것은 성장이 아니라 경제민주화라고 진단한다. "지난 10년간 성장률은 국제 기준으로 보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으나 경제력 집중과 불공정 거래, 양극화는 심화됐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진행 중인 위기를 지적하며 "양적 투자를 위주로 한 성장단계는 이미 지났고, 성장잠재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필요한 것은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규제의 투명성과 일관성이라는 주장이다.
이찬근 시립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최근 사회적 불안의 진원이 된 국제적 금융위기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조명한다. 세계화된 자본은 기술과 생산의 입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됐는데, 자본이 국가 및 노동과 타협할 필요가 없어짐으로써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게 됐다는 시각이다.
"구조조정을 지휘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금융"이 돼 버린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탈산업화되고 사회적 의제를 다룰 힘을 잃었다. 고소득을 갈망하는 엘리트층도 자본과의 공생관계가 깊어져 시민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이 무력화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이 유독 이런 흐름에 휩쓸리는 원인을 보수세력에 의해 '좌파 정권 10년'이라 불리는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에서 찾는다. 정치적 승리를 쟁취했던 한국의 반독재 진영이 자본의 역동성으로 경제 활력을 키우려는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데서 위기가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메커니즘 속에선 번영의 기회는 축소되고 불안의 위협만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적 리더십을 뛰어넘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리더십은 '지구적 금융제국의 순환 메커니즘을 읽어내고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의미한다.
공공산업 민영화 문제도 민주주의의 위기 관점에서 다뤄진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산업은행 매각과 수도사업 민영화를 계기로, '시장의 실패'보다 심각한 '공공경제의 실패'를 예견한다. 홍 위원은 정치영역과 경제영역을 이분법적으로 나눠보는 시각을 비판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