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세관장 모친상 알림', '원산지심사과 C사무관 결혼을 알려드립니다.'…
23일 관세청 공무원직장협의회 홈페이지(www.opencustoms.or.kr) 메인 화면 경조사란을 클릭한 결과다. 전국 관세 공무원들의 결혼 및 장례 등 경조사가 보란듯이 일목요연하게 게시돼 있다.
6급 이하 공무원들이 가입한 직협 회원 전용임에 틀림없지만, 누구나 볼 수 있다.직장 상사 경조사까지 올려놓음으로써 다분히 '의도'가 있어 보인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지난달까지 경조사 직원들의 은행 계좌번호까지 공개됐다는 사실이다. 세관 업무가 잦은 한 무역통관회사 관계자는 "공무원 경조사를 홈피에 올려놓은 자체가 알아서 챙기라는 뜻 아니겠느냐"고 씁쓸해 했다. 민원인들에게는 압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 아이 돌잔치와 고희연도 올려
민원인 접촉이 잦은 일부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경조사 정보를 인터넷에 버젓이 올려 빈축을 사고 있다. '직무 관련자 등에게 경조사를 통지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한 공무원 행동강령의 취지와도 어긋난 것이다. 시민들도 "관련 민원인들에게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강요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하고 있다.
23일 본보가 각 직협이나 공무원노조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공무원들의 경조사 정보를 공개 게시한 곳은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중앙부처를 비롯해 서울시 구리시 성남시 충주시 등 지자체를 포함, 모두 10곳이 넘었다.
서울시 노조는 부고나 결혼 외에도 아이 돌잔치, 부모 고희연 초대장까지 경조사 게시판에 올렸고 경기 양평군 직협은 매달 생일을 맞은 공무원 명단까지 공개했다.
경기 지역에서 건설사를 운영하는 김모(33)씨는 "경조사 정보를 챙겨 부조금을 내라는 것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공무원 직협측은 "직원들의 경조사를 함께 나누기 위한 내부용"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민원업무를 맡은 공무원들의 경조사가 불특정 다수에게도 공개될 경우 뇌물 수수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내부 통신망을 활용하거나 회원들만 보도록 한 게 아니라 일반인 접근도 가능케 한 까닭에서다.
■ 후유증 속출
경조사 공개 후유증도 속출하고 있다. 관세청의 경우 6월 경조사 정보를 악용한 허위 고발 사건까지 벌어졌다. 서울 세관으로부터 관세포탈 혐의로 조사받게된 한 수입업자가 직협 홈페이지에서 담당 K수사관의 장모상 사실과 계좌번호를 확인해 익명으로 1,000만원을 입금한 뒤 경찰에 'K수사관이 뇌물을 받았다'고 허위 고발한 것이다.
이 수사관은 구속영장까지 신청됐다가 최근에서야 누명을 벗게 됐지만, 경조사 정보가 뇌물 수수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음을 방증한 셈이다.
해당 부처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직협이 결정해야 할 부분"이라며 소극적인 입장이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공무원 경조사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외부인도 볼 수 있게 공개 게시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 여부를 따져 적절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관세청 직협은 본보가 취재에 들어가자 이날 오후 늦게서야 홈페이지에서 경조사란을 삭제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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