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대답은 배우로서 그가 걸어온 발자취와 무척 닮아 있었다. 질문의 내용을 곱씹어 생각하면서도 짤막하고 담담하게 돌아오는 메아리들. 다작을 피하고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하되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할로 뮤지컬 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온 그간의 그의 행보가 꼭 그러했듯.
11월 14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주인공을 맡아 류정한, 김우형과 번갈아 무대에 서게 된 배우 홍광호(26)는 오디션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당당히 새로운 지킬이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도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서른이 되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역할이었는데 꿈을 이루게 돼 감사할 따름이죠. 아직 어리고 경력도 짧아 오디션 결과를 사실 많이 걱정했거든요."
2002년 '명성황후'의 앙상블로 뮤지컬에 데뷔해 '스위니 토드'의 토비아스, '씨왓아이워너씨'의 강도 등으로 주목을 받은 그지만 대형 뮤지컬의 주인공을 꿰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에게 무대의 크기나 역의 비중, 함께 캐스팅된 배우들의 화려한 경력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내 연기는 나밖에 못하는 것이며 내가 하는 게 정답"이라 믿기 때문이다.
"저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살피는 일은 지난해 '첫사랑'에 출연한 이후 끊었어요.(웃음) 지킬 박사와 그 내면에 살고 있는 하이드의 캐릭터를 동시에 소화해 인간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지킬 역을 선배들만큼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은 되지만 다른 캐스트는 의식하지 않으려 해요. 배우는 내가 말하는 게 진실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의 무덤덤한 태도와 관계없이 새로운 지킬 홍광호를 향한 뮤지컬 팬의 관심도는 가히 폭발적이다. 그는 "평범한 외모 덕분에 개성 있는 역할을 맡을 때 오히려 주목 받는 것 같다"고 겸손해 하면서도 "단지 운만으로 이번 역할을 맡게 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에겐 제가 단기간에 급성장한 배우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저로서는 고등학생 때부터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다양한 훈련을 거쳐왔으니 10년이 넘는 준비 기간을 가진 셈이죠."
더욱이 막연한 준비가 아닌 전략적 접근을 시도해 왔다는 그다. 유난히 외국인 연출가와 함께 작업한 작품이 많았던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는 것.
"'명성황후' 앙상블 경력이 모두인 채로 군 복무를 마쳤으니 오디션을 보면 서류심사에서 자꾸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배우에 대한 사전 정보보다 오디션 결과만으로 평가를 하는 해외 스태프 참여 작품으로 눈을 돌린 거죠."
남자 배우들에게 꿈의 배역인 지킬 역을 따냈으니 더 바랄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이렇게 욕심 많은 그라면 분명 다음 행보도 계획돼 있을 듯했다.
"아뇨, 그냥 이제 차근차근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하려고 해요. 내 존재가 빨리 수면 위로 떠올랐으면 좋겠다 생각한 때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당장 눈 앞의 것을 좇으려 하기보다 그릇을 먼저 키우려 해요. 책도 읽고 음악도 많이 들으면서."
'지킬 앤 하이드'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 속이 꽉 차 있다는 그는 작품에 대해 묻자 아껴왔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지킬이 절대선이 아니듯 하이드도 절대악은 아니죠.
이성을 잃어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하이드뿐 아니라 지킬에게도 악의 본성은 분명 있어요.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이 단지 노래와 의상, 연기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교훈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요즘 머리 속으로 벌써부터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을 하고 있어 큰일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씨왓아이워너씨' 공연부터 잘 끝내야 하는데…"(웃음) 공연 문의 1588-5212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