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말 보수 성향의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눈에 띄는 기사를 하나 내놓았다. 2006년 미국의 국민총소득에서 상위 1% 부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22%로, 같은 기준의 통계가 작성된 1988년 이래 1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내용이다. 같은 통계가 없어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 같은 1%의 소득비중은 1929년 이후 가장 높을 것이라고 신문은 추정했다. 이 신문은 또 상위 1% 부자들의 2006년 평균 세율은 22.8%로 5년 연속 하락했다며 미국사회가 갈수록 1%를 위한 나라로 흘러간다고 우려했다.
시험대 오른 월가 금융자본주의
1930년대 뉴딜로 명명된 자유주의적 개혁으로 크게 개선된 미국의 소득 재분배가 개방과 세계화로 무장한 '신자유주의 30년 통치' 동안 어떻게 얼마나 악화됐는지를 실증 분석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미래를 말하다(원제 the consience of a liberal)> 라는 책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2005년 국민총소득에서 상위 1%와 10%가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7%와 44%를 넘어 정확하게 1920년대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미래를>
책에서 그는 지난 30년 뉴욕 월가가 전 세계에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점(Government is the problem, not the solution)"이라는 신자유주의 교리를 전파하며 얼마나 탐욕스런 성장과 그들만의 세상을 만끽해왔음을 까발긴다.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사상적 원류로, 규제 완화와 감세를 정책적 무기로 삼은 이 교리는 때마침 고안된 첨단 금융공학의 도움을 받아 전 세계에 위세를 떨쳤다. 시장을 키우고 거품을 만들며 그들이 창출하는 거대한 수익의 축복을 어느 누구도 거부하기 쉽지 않았고 '규제완화=성장'의 등식은 철옹성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았다.
크루그먼이 그 수익의 축복이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국가를 건설하려던 건국선조들의 이상을 뿌리부터 배반하는 위선이라는 것을 일찍이 눈치챈 인물이라면,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롬비아대 교수는 신기루같은 월가식 금융자본주의의 몰락을 오래 전 예견한 사람 중 하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그는 지난해 말 방한해 "지속 가능성이 없는 것은 지속할 수 없다"는 선문답 같은 말을 던졌다. 당시 그는 대표적 사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몰고 올 재앙을 거론하며 주택시장의 과열과 금융자본의 탐욕을 방치 혹은 조장한 앨런 그린스펀 전 FRB의장을 맹비난했다.
이들의 카산드라적 예언대로, 결코 해가 지지 않을 것 같았던 '엉클 톰 제국'의 영광은 자신들이 만든, 전염성 높은 내부의 바이러스에 의해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그토록 신봉하던 시장이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자 월가는 2008년 9월19일 "문제는 시장이고 정부가 해결책"이라는 이교(異敎)로 재빠르게 개종했다. 세계의 유수 언론들이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고한 결정적 전환(decisive turn)'이라고 평한 미 정부의 7,000억달러 구제금융은 시스템 안정을 위한 대규모 국가개입이라는 점에서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부시판 뉴딜'이라고 불릴 만도 하다.
아이러니는 부시 행정부가 자가당착적인 조치를 "납세자인 미국인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포장한 점이다. 단기 수익에 어두워 시장을 뒤엎어 놓고도 유유히 '황금낙하산'을 타고 떠난 신자유주의의 사생아들의 패륜적 행태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혹자는 이번 금융위기로 시장규제와 감독이 대폭 강화돼 세계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월가의 도덕적 해이를 사면한 이번 조치는 결국 '1%의 승리'에 다름 아니다.
전환기적 의미와 교훈 잘 따져야
79년 전 10월24일 뉴욕증시 대폭락으로 시작된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2008년 판 검은 9월'은 고무줄같은 납세자 보호논리로 일단 진정되는 추세이지만, 좋은 규제의 필요성 등 발발과 후폭풍에 담긴 전환기적 의미는 실로 중대하다. 정부가 뉴욕 발 태풍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단기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크고 깊은 안목을 가져야 할 때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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