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78)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은 62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젊은시절 멈출 수 없는 투자에 대한 열정 때문에 조강지처에게서 사실상 버림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버핏은 '가치 투자'의 중요성을 입증한 산증인으로서 투자에 관한 한 독보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는 그 밖의 일에선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한동안 아내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가장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MSNBC는 공식 자서전 <스노볼-워런 버핏과 인생경영(the snowball: warren buffett and the business of life)> 이 오는 29일 출간되기 앞서 오디오판을 입수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버핏 사생활의 일부 내용을 22일 소개했다. 스노볼-워런>
자서전 오디오판에 따르면 버핏은 20대 초반 수전 버핏과 결혼했을 당시 머리도 아내가 깎아줘야 하고 접시를 정돈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데도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고 한다.
모건 스탠리의 애널리스트로 일할 때 버핏을 처음 만난 게 인연이 돼 2003년 그의 의뢰를 받아 수천 시간의 인터뷰와 자료 조사 등을 토대로 자서전을 집필한 앨리스 슈뢰더는 책에서 "수전은 사업을 제외한 모든 생활에서 남편이 자신감을 잃고 있는 사실을 차츰 깨달았다"며 "버핏이 사랑을 느껴본 적도 없고 수전도 그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적었다.
버핏은 1956년 4명의 친척과 3명의 친구에게서 모은 10만5,000달러로 투자회사 버핏 파트너십을 설립했다. 회사는 1962년 뉴잉글랜드의 섬유회사 버크셔 헤서웨이 주식을 주당 7달러와 8달러에 사들이기 시작했으며 1969년에는 버크셔가 버핏의 투자창구가 됐다.
당초 수전은 8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의 재산이 모아지면 남편이 투자를 그만둘 것이라는 묵계가 부부 사이에 성립된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1967년 재산이 900만 달러로 불어났어도 투자 사업에 대한 버핏의 의욕은 좀처럼 식기는커녕 더욱 왕성해 졌다.
때문에 부부는 따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수전이 지역사회 단체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이 버핏은 투자에만 매달렸다.
이런 비정상적 부부 관계가 계속되다가 1977년 수전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친구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그곳에 아파트를 장만하기로 결심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예술친화적인 도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데다가 막내 아들이 다니던 스탠포드 대학에서 가까웠다.
버핏 곁을 떠나 혼자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한 수전은 친구인 애스트리드 멩크스에게 남편을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이로 인해 멩크스는 자연스럽게 수전을 대신해 버핏의 반려자가 됐다.
1984년 수전은 시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오마하로 돌아왔는데 버핏에게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이유가 다른 남자가 생겼기 때문이라며 결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버핏은 수전과의 파경에 관해 멩크스를 비롯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버크셔의 경영에 몰두하면서 마음 속 쓰라린 기억을 지우려 애를 썼다고 한다.
이미 끝난 결혼생활이었으나 둘은 이혼을 하지 않았고 그후 20년 가까이 종종 왕래하며 지냈다. 버핏은 수전이 2004년 사망하자 오랜 동반자이던 멩크스와 2006년 76세 생일날 비밀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됐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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