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등학교 인근 문구점 등을 통해 급속도로 유포되고 있는 '괴담집'과 관련, 정부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단속을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실효성 여부는 미지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8월 말 '초등학교 괴담집 유통 중지를 위한 교육활동 강화'라는 제목의 공문을 각 시ㆍ도교육청에 내려 보냈다"고 23일 밝혔다.
교과부가 유해도서로 지목한 괴담집은 '죽음을 부르는 노트 데스수첩', '공포의 지하실', '神 홍.콩.할.매' 등 총 18권. 인터넷에 떠도는 공포 이야기를 짜깁기 하거나 구전되는 괴담들을 채집해 수록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표현 수위는 여느 공포 소설 못지 않게 적나라하다. 원한에 얽힌 살인, 보복 등 폭력적이고 잔인한 내용을 가감없이 담고 있다.
환각상태에 빠진 자녀가 부모를 흉기로 찌르거나 어머니가 자식을 살해하는 등 표현과 내용 전개에 있어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비윤리적인 이야기도 많아 초등학생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교과부 판단이다.
이런 책들은 크기가 담뱃갑 정도여서 휴대가 간편한데다 가격도 500원에 불과해 학교나 아파트 단지 문구점을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서울 S초등학교 4학년 이주원(10)군은 "공포 괴담집은 무섭기는 하지만 내용이 재미있어 친구들끼리 자주 돌려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괴담집이 정식 출판물이 아닌 문구류로 분류돼 유통되고 있어 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현행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저자, 발행인, 발행일 등 기록사항을 표시한 간행물만 심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청소년보호법 적용대상도 만화, 사진, 화보집, 소설 등 도서류만 해당되고, 일반 형법 또한 음란물의 제작, 유포에 대한 처벌 조항만 규정돼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개인사업자가 기획, 제작한 뒤 사설 인쇄소에서 찍어낸 불법 인쇄물이어서 유통 흐름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교과부, 보건복지가족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등 정부 부처 및 관련 기관들은 7월 합동 대책회의까지 열고도 "관계기관이 소관업무 범위 내에서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한다"는 정도의 선언적 대책만 내놨을 뿐 뾰족한 결론은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학교들도 기껏해야 괴담집 목록을 열거한 가정통신문이나 알림장을 각 가정에 보내 자녀 독서지도에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당부하는 것이 고작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불법 도서도 어린이들의 정신 건강을 좀 먹는다는 점에서 해롭기는 불량식품이나 마찬가지"라며 "어린이들의 얄팍한 주머니를 노린 상술에 동심이 멍들지 않도록 정부가 하루빨리 단속 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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