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출신의 벌집머리 여성이 가족, 애국심 등의 가치를 앞세워 떠오르는 것은 형편없는 미국 TV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
이 달 초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이후 번진 '페일린 열풍'에 대해 호주의 한 칼럼니스트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내용이다. 변방 중의 변방인 알래스카에서 주지사로 활동한 지 2년도 안된 젊은 여성이 하루아침에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존 매케인의 옅은 공화당 색채에 시큰둥하던 보수주의자들이 구세주라도 만난 양 일제히 매케인-페일린 티켓에 열광하는 풍토를 꼬집은 것이다.
▲ 페일린 바람의 근원은 남성들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의 부통령후보 지명 효과는 현실에서 증명됐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에 크게는 10% 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끌려가던 매케인 후보가 페일린의 등장 이후 며칠 만에 우세를 보이고, 이후 점칠 수 없는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다. 페일린이 없었다면 '매버릭'이라는 무당파 이미지에 나이 70을 넘긴 노인 매케인이 이런 인기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페일린이 가는 유세장마다 그를 연호하는 함성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연예잡지와 온라인에서는 페일린 마케팅이 한창이다. '토크쇼의 여왕'오프라 윈프리가 자신의 프로그램에 페일린을 초대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시청자들의 보이콧 공세까지 받는 형편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페일린 바람의 진원지이다. 5자녀의 어머니이자, 임신한 고교생 딸, 다운증후군을 앓는 막내 아들을 둔 페일린의 가족에 대해 여성 유권자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라는 것, 갈 곳을 못 찾던 힐러리 클린턴 지지 여성들이 공화당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 페일린에게서 대리만족을 찾고 있다는 해석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CNN의 7일 여론조사를 보면 매케인-페일린 후보에 대한 지지는 남성들 사이에서 압도적이다. 51%의 남성이 공화당 티켓을 지지한 반면 여성 유권자는 52%가 오바마-바이든 민주당 티켓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일린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가'에는 남성의 60% 가까이가 인정한 반면 여성은 절반 이상(54%)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힐러리를 지지했던 여성들은 "페일린과 힐러리는 다르다"며 "같은 여성이라고 페일린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한다.
힐러리가 능력에도 불구하고 '강한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낙마했고, 페일린은 능력과 관계없이 '젊은 여자'라는 이유로 발탁됐다면 페일린 바람의 성격은 달라진다. "페일린 지명은 정치적 결혼이며 페일린은 매케인의 트로피 와이프"라고 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지적이 사실이라면 매케인은 페일린 카드가 공화당 남성 보수세력이 만들어낸 정략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 실력으로 겨루는 여성정치를
일부에서는 낙태, 총기 소지, 온난화 문제 등에서 극단적인 보수주의 시각을 드러내는 페일린을 놓고 '문화적 피뢰침' '문화전쟁'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젊은 여성의 강렬한 이미지에 극단의 이념까지 덧씌워진 페일린에게서 차분하게 국정을 운영할 능력이 있는지 찾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대선 판도에는 거의 의미가 없지만 환경주의 단체인 녹색당은 최근 미국사상 처음으로 신시아 매키니 전 하원의원과 시민운동가인 로사 클레멘트 두 여성을 정ㆍ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여성들의 잇단 대선 참여가 1984년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가 여성표를 끌어오겠다는 계산으로 제럴딘 페라로 하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뒤 참패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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