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세계가 온통 금융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문들을 보면 하나같이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비롯된 위기'라고들 합니다.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라는 게 무슨 전염병도 아닐텐데, 어떻게 미국에서 시작해 전세계를 뒤흔들게 되었을까요. 닥터 이코노미에게 물어봅시다.
▲ 서브프라임 사태가 뭐죠
전파 과정을 알려면 먼저 발단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우리는 좀처럼 빚 내기를 어려워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우리와 문화가 달라 집을 살 때 계약금을 뺀 대부분을 대출로 조달합니다. 이런 대출을 '모기지 론'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모기지 론은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등급에 따라 높은 순서부터 프라임(prime), 알트에이(Alt-A) 및 서브프라임(subprime)으로 나뉩니다. 그러니까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대체로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돈, 우리식 표현으로는 '우량'의 반대인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인 셈이죠.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는 장기간 저금리 상태가 지속되면서 사람들이 큰 이자부담 없이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너도나도 집을 찾으니 집값도 많이 올랐죠. 이자 부담보다 집값 상승폭이 더 크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게 됐구요. 바로 이 과정에서 '장사가 되겠다' 싶었던 모기지 업체 간에 대출경쟁이 벌어지면서 부실 위험이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사실 금리가 낮고 집값이 뛰던 시절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늘어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1,000달러에 산 집이 2,000달러로 올랐다면 비록 빚을 다 못 갚았어도 만기 때 오른 집값을 담보 삼아 대출기간을 쉽게 연장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2006년부터 차츰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내림세를 보이면서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매달 이자가 그 만큼 늘어나는데, 주로 저소득층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고객들은 부담이 더욱 커졌죠. 여기에 집값까지 떨어지니 대출연장이나 추가대출이 어려워져 결국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연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겁니다. 이렇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의 대출자산이 부실화된 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사태'랍니다.
▲ 서브프라임 부실이 왜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된거죠
사실 서브프라임이 부실해져도 몇몇 해당 모기지 업체만 문을 닫으면 그만이어야 맞습니다. 2000년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모가 크게 늘었다지만 미국 경제 전체로 보면 비중도 아주 작았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작년 여름 프랑스의 대형 은행인 BNP파리바가 모기지 관련 펀드의 상환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이후,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이 순식간에 폭락하는가 하면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했을까요.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파생상품을 동원한 '유동화'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관련 금융자산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기 어렵다고요? 자세히 살펴보죠.
모기지 업체들은 대출금을 회수하기까지 장기간이 걸리므로 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기지 업체는 대출고객에게 원금과 이자를 받을 권리를 기초로 일종의 증권을 발행(유동화)하고 이를 투자은행(IB)에 팔아 자금을 확보합니다. 투자은행(IB)들은 이 증권을 바탕으로 다시 다양한 금융상품, 즉 파생상품을 만들어 고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나 보험사같은 투자자에게 판매합니다. 가령, 애초에는 1만달러의 원리금을 받기로 한 권리가 이처럼 '유동화' 또는 '증권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많게는 수백만~수천만달러의 금융자산으로 둔갑하는 셈이지요.
결국 이런 자산을 들고 있던 각국의 각종 금융회사들이, 출발점인 서브프라임이 부실화되자 줄줄이 타격을 입게 된 겁니다. 언뜻 보면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같은 대형 IB들이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도 유동화, 증권화를 거친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을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워낙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니 내가 가진 자산의 뿌리가 어딘지 모르게 됐다는 점입니다. 기초 자산을 모르니 보유중인 자산이 안전한 건지, 부실한 건지도 모르겠죠? 언젠가 문제가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래서 투자심리를 극도로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불안감이 커지면 시장 참가자들은 거래 상대방을 믿지 못하고 결국 가장 안전한 자산인 현금을 앞다터 확보하려 하게 됩니다. 투자자들의 현금 확보 움직임이 과열되면서 돈을 주고받아야 돌아가는 금융시장이 경색되고 사소한 사건에도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해 시장불안이 叢?증폭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 우리나라에도 영향이 큰가요
다행히도 국내 금융시장은 미국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국내 금융사들은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에 투자한 금액이 많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투자손실은 크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로 국제적인 투자자들의 자금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우리 기업 및 금융사들의 해외로부터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또 자금 확보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주식을 대량 매각하면서 실제 국내 주가하락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구요.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매각한 자금을 본국에 송금하려면 달러화로 바꿔야 하는데 이 때문에 원ㆍ달러환율이 상승하는 등 외환시장 불안도 심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금융시장 혼란은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가 장기화 되면서 미국 및 세계경제가 위축될 경우, 우리나라 수출이 줄어들게 됩니다. 또 이번 금융위기로 국내 주가가 급락하면 가계 및 기업의 자산가치가 줄어들고 이는 '역(逆) 부의 효과'(풀어읽는 키워드 참조)를 일으켜 소비와 투자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위기가 얼마나 갈까요
요즘도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불안이 고비를 넘겼다는 견해와 이번 금융불안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데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한 추가 부실규모가 얼마나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불안심리와 시장의 급변동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 즉 미국의 주택시장 호황기에 이루어진 질 낮은 대출이 정상화 되려면 앞으로도 많은 기간이 소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풀어읽는 키워드/ 부의 효과(Wealth Effect)
자산가격 상승이 소비 늘리는 현상
부(富)의 효과란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가격 상승이 소비를 늘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갖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올랐다고 해 봅시다. 당장 주머니의 현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라도 주식을 팔아 쥘 수 있는 돈이 많아지겠죠. 그래서 전보다 소비를 더 한다는 얘깁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죠. 보유중인 집값이 오르면 집 주인은 재산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이전보다 씀씀이가 커질 여유가 생길 겁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실증분석 결과를 보면 주가 및 토지가격이 상승할 경우 민간소비 증가율과 비내구재 소비 등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국내외 금융시장 불안이 계속되고 전세계적인 유동성이 빠르게 줄어들어 주가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면 개인의 소비심리나 여력은 위축될 수 밖에 없겠지요. 이런 경우를 '역 부의 효과'라고 합니다.
■ 서브프라임으로 사라진 회사들
서브프라임 사태가 요즘처럼 전세계 금융위기로 번진 데는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연달아 무너진 탓이 컸습니다. 무시무시했다는 미국의 대공황과 세계대전 때도 살아 남았던 회사들이 순식간에 문을 닫거나 다른 회사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전세계 투자자들이 더욱 공포에 떨게 됐기 때문입니다.
올들어 가장 먼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건, 미국 5위의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였습니다. 1923년 설립된 베어스턴스는 2000년대 들어 채권부문, 특히 모기지를 담보로 한 채권 발행 시장에서 실적 2위에 오를 정도로 적극적 영업을 한 탓에 부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컸습니다.
작년 6월에는 모기지 채권에 투자했던 계열 헤지펀드가 엄청난 손실을 입고 파산하면서 서브프라임 사태의 시작을 알렸던 주인공이기도 하죠. 베어스턴스는 작년 4분기에만 우리돈 9,000억원 가량의 순손실을 입고 허덕이다 결국 3월16일 JP모건이라는 은행에 인수되고 말았습니다.
이달 들어서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라는 모기지 보증업체 2곳이 미국 정부에 인수됐습니다. 원래 정부가 세운 공기업으로 출발한 두 회사는 일선 모기지 업체들이 쉽게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이들의 대출채권을 사주고, 이를 다시 증권화해 되팔아 돈을 벌었었죠. 미국 모기지 시장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던 두 업체가 서브프라임 사태 여파로 위태로워지자 결국 미 정부는 우리돈 200조원 이상을 들여 이들을 되사고 말았습니다.
지난주 초 15일에는 미국내 IB 순위 3, 4위였던 메릴린치와 리먼브러더스라는 회사가 한꺼번에 간판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1914년 설립된 메릴린치는 전세계 40개국에서 2,000조원 가까운 자산을 운용하며 한때 우리나라 금융사들의 희망모델로 칭송받던 회사였습니다.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지난 10년간 벌어들인 이익의 절반을 날릴 정도로 타격을 입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됐습니다.
리먼브러더스는 1844년 세워져 역사가 더 오래됐습니다만 역시 모기지 투자 손실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은행에도 "인수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자 결국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위기설이 나돌다 지난주 중반 미국 정부가 인수하기로 한 AIG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보험회사입니다. 하지만 보험 말고도 사업영역이 넓고 다양해 망할 경우, 훨씬 더 큰 피해가 우려되자 결국 미국정부가 세금을 들여 사기로 했답니다.
강기윤 한국은행 조사국 조사역 김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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