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A씨가 1억원에 매물로 나온 옆집을 팔았다. 2,000만원의 차익까지 누렸다. 있지도 사지도 않은 집을 무슨 수로 팔고, 어떻게 수익까지 냈을까. A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일단 집을 잠깐 빌려서 다른 사람에게 나중에 집을 넘기는 조건으로 현재가(1억원)에 판 다음 집값이 떨어진 뒤 실제 옆집을 8,000만원에 사서 구매자에게 집을 줬지요." 논리는 그럴싸하지만 현실에선 도저히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엔 '공(空)매도'라는 이름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거래 방식이다. 다양한 투자기법을 통한 시장 활성화와 유동성 확대, 균형가격 형성 기능이라는 기대를 등에 업고 시장에 등장했다. 주식을 빌려(혹은 없는 상태에서) 판 다음 해당 종목의 주가가 내리기를 기다려 주식을 시장에서 되 사 갚는 구조인 탓에 필연적으로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벌 수 있다. 주가가 올라야 수익을 내는 기본 투자의 역(逆)발상인 셈이다.
이 기법이 요즘 전 세계 증시 불안의 원흉으로 낙인이 찍혔다. 주가가 떨어져야 웃는 반골(反骨) 기질이 안 그래도 침체 상태인 증시를 더욱 어지럽히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미 영국과 미국은 칼을 빼 들었다.
영국 금융청(FSA)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18일(현지시간)부터 내년 1월 16일까지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10월 2일까지 금융주(799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블룸버그통신> 이 19일 보도했다. 불법은 아니지만 투자자와 자본시장을 위협하는 시장조작세력이라는 게 이유다. 블룸버그통신>
실제 약세장이 이어지면서 공매도의 태도는 악의적으로 변했다. 해당 종목에 대한 악성 루머나 허위 정보를 퍼뜨려 주가를 더 떨어뜨리는가 하면, 공매도 주문이 해당 종목의 주가가 더 떨어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투매 양상으로 치닫는 식이다. 공매도는 특히 리먼브러더스, AIG,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의 금융주에서 기승을 부렸다.
미국에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공매도가 시가총액의 20%에 달할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관련 규제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데, 이참에 미국이 공매도 잠정 금지와 아울러 불법적인 공매도 수사에도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올 들어 국내 증시의 공매도 주식 규모는 30조원을 넘어섰다. 이 달 들어서만 3조원 이상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외국인 공매도 조사 결과 10조원 이상이 공매도 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우리 상황에서 공매도는 대부분 외국인(93%)이 이용하기 때문에 증시 하락을 압박하는 외국인의 매도 공세에 활용되고, 개인투자자의 투매까지 부추기고 있다.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루머와 허위정보도 판치고 있다. 심지어 공매도로 번 돈을 국내 외환시장에서 다시 달러로 바꿔가는 과정에서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우리도 공매도를 잠정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감원은 19일 불법 공매도 등을 파악하기위한 유가증권시장 입출고 내역검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주가가 오를 때 개인투자자의 신용을 제한하듯, 투기적 공매도가 지나치면 이를 제한해 가격 왜곡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미국보다 공매도 비중(4%대)이 적은데, 공매도를 증시 하락의 주범으로 몰면 외국인 투자심리 위축 등 중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의 공매도를 '셀 코리아'나 달러 빼가기로 이해하면 안 된다"며 "정부가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한국이 외국인에게 폐쇄적인 시장으로 비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시스템이 다르고 나름의 안전판이 있다는 점도 부각됐다. 미국과 영국이 이번에 제한하는 공매도는 '네이키드(naked) 공매도'(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공매도)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를 이미 금지하고 있고, '커버드(covered) 공매도'(주식을 빌려 공매도)만 허용하고 있다. 또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공매도 주식을 팔 때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팔도록 한 '업틱 룰'(Up-tick Rule) 규제도 미국 영국과 달리 도입하고 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