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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푸르름의 변주… "천국의 바다를 거니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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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푸르름의 변주… "천국의 바다를 거니는 기분"

입력
2008.09.2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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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가장 가까운'이란 표현이 진부해서였을까. 뉴칼레도니아로 가는 여정이 그리 썩 내키질 않았다.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꼈던 묘한 설렘도 이번엔 느끼질 못했다.

뉴칼레도니아는 일본 여성 작가 모시무라 가쓰라가 1965년 이 섬을 배경으로 쓴 소설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섬> 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본인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라고 했다.

그나마 '파라다이스'란 직설적이고 상투적인 표현보다는 조금은 봐줄 만 하다는 생각을 하며 긴 비행 시간 내내 불편한 좌석에 갇힌 채 억지로 눈을 감았다.

통투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건 밤 10시가 넘어서다. 수도인 누메아까지 짙은 어둠을 가로질러 차를 달렸다. 길이 캄캄했기에 하늘의 별은 더욱 밝게 빛났다. 45분가량 숲길을 지나 도착한 누메아.

도시는 의외로 컸다. 높은 공장 굴뚝, 부두의 크레인 등이 공지선을 뚫고 날카로운 윤곽으로 솟구쳤다. 바닷가 큰 항구 도시에서 흔한 일상적인 밤 표정이었다.

애써 피한 시선은 차창 밖 하늘로 올랐다. 젠장, 도시의 불빛 때문에 그나마 아름답던 별빛마저 사그러들고 말았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인기척 없는 시가지는 을씨년스러웠다. 자꾸만 이곳은 천국이 아닐 거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숙소에 몸을 뉘고 뒤척이다 잠을 청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밝은 기운에 눈이 떠졌다. 창 밖에 펼쳐진 바다. 어젯밤엔 두꺼운 어둠에 가려 윤곽도 보이질 않던 바다다. 남태평양의 찬란한 바다가 이른 아침의 태양을 받아 번쩍거렸다.

같은 야자수 잎에 떨어지는 빛인데도 남태평양의 빛은 그 스펙트럼이 10배, 100배가 더 되는 듯 오묘한 빛깔이다. 바다의 빛과 색에 마음은 갑자기 열기구처럼 부풀어 올랐다. 정말 파라다이스의 문이 열리나 보다.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모젤항으로 나가 아메데 섬으로 가는 페리에 올랐다. 2층의 갑판에선 민속공연단의 노래가 시작됐다. 흥겨운 노랫가락. '스위트, 스위트, 스위트~'의 후렴구가 귀를 파고든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도 달콤했다.

외로운 등대 하나 우뚝 솟은 아메데 섬이 가까워졌다. 멀리서도 비죽 솟은 등대가 보였다. 옥색의 물빛과 남색의 하늘 때문에 등대의 흰색이 더욱 도드라졌다. 배에서 내린 100여명의 승객들이 다들 어디로 스며들었는지 북적대던 선착장가는 금세 평온을 되찾았고 오수에 빠져들었다.

물안경을 쓴 이들은 산호의 바다로 뛰어들었고, 토플리스 미녀들은 부끄럼 없이 드러누워 햇덩이를 껴안는다. 그들의 속살을 태우는 태양에 내 마음도 같이 타들어갔다.

그늘에 누워 있다 심심해질 무렵 바닥에 유리를 댄 글래스보트를 타고 색색의 산호와 물고기를 구경하러 나섰다. 산호 군락에 보트가 멈춰 서자 관광객 여러 명이 바로 바다로 뛰어들어 스노클링에 들어간다.

얼마나 많은 열대어 사이를 유영하는 걸까. 물질하던 한 일본인 관광객이 보트의 같은 일행에게 "와사비, 와사비"를 외쳐댄다.

우리가 물고기 떼를 보고 바로 초장을 떠올리듯 그네들도 열대어들이 싱싱한 횟감으로 느껴졌나 보다. 보트는 한바탕 웃음으로 휘청거렸다.

한나절 아메데섬에서의 유쾌한 소풍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말끔히 샤워를 하고 다시 선셋크루즈에 나섰다. 새하얀 요트를 타고 떠나는 뱃길이다. 중저음의 엔진 소리와 함께 출발한 요트는 점점 먼바다로 향했다. 저 멀리서 짙은 구름이 몰려오자 항구 앞 작은 섬의 수상 리조트 위로 선명한 무지개가 굵게 피어 올랐다.

돛이 펄럭이며 올랐고, 부푼 바람을 안고 요트는 파도를 튕기며 내달렸다. 멀리 나갈수록 파도는 높아졌다. 뱃머리 그물망에 비스듬히 누워 캔맥주 한 모금을 넘기고는 하늘을 보고 바다를 쳐다본다. 다른 음악이 필요없다. 치오른 파도에 물벼락을 맞아도 마냥 즐겁다. 웃음만 쏟아진다.

해가 뉘엿 지면서 하늘엔 점차 노을이 스며들었다. 붉게 타들어간 노을이 맘속 바닥에 깔려있던 괜한 찌끄러기 걱정들도 함께 태워버렸다. 가슴 속 기쁨의 엔진에 발동이 걸린 걸까. 벅찬 행복으로 충만해진다. 그래, 파라다이스가 뭐 별거겠는가.

누메아(뉴칼레도니아)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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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칼레도니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옆에는 모리셔스라는 작은 섬나라가 있습니다. 16세기 말 네덜란드인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 섬의 주인은 도도(Dodo)라는 덩치 큰 새였습니다.

25kg에 달하는 뚱뚱한 도도는 날지 못했습니다. 먹을 것이 넘치고 육식동물이 없는 섬은 도도에겐 천국이었죠. 날아다닐 필요가 없어 날개는 퇴화하고 말았습니다.

먼 뱃길에 지치고 허기졌던 네덜란드 선원들은 처음 보는 사람을 피하지도 않는 도도새가 너무나 고마웠을 것입니다. 선원들은 큰 어려움 없이 도도를 사냥했고 150년도 지나지 않아 이 섬에선 도도새가 단 한 마리도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도도는 그렇게 사라졌고, 인류에 의해 멸종된 최초의 종이란 이름표만 남았습니다.

뉴칼레도니아에도 도도와 비슷한 새가 있습니다. 카구(Cagou)라는 펭귄만한 새입니다. 뉴칼레도니아는 고대의 생물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섬입니다. 공룡이 살던 시대 살았던 나무가 지금도 자라고 있고, 지구에서 다섯 번째로 다양한 생물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섬에도 육식동물이 없었습니다. 유일한 포유류가 박쥐 종류인 '플라잉 폭스'입니다. 해를 입힐 동물이 없기 때문에 아카시아 같은 가시가 돋은 식물이 이 섬엔 하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새들의 천국, 식물의 천국입니다.

카구도 그 천국에서 나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천적이 없으니 무섭다는 것을 모릅니다. 천하태평인 세상이다 보니 번식도 그리 급하지 않습니다. 양계장 닭들은 하루 하나 이상씩 알을 낳는데 카구는 1년에 단 하나의 알만 낳는답니다.

뉴칼레도니아에 유럽인들이 몰려들면서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이들이 가져온 개들 중 일부가 들개가 되어 숲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도망도 안 가고 날지도 않는 카구는 훌륭한 먹잇감이 됐습니다. 거의 멸종되다시피한 카구는 뒤늦은 복원 노력으로 현재 45마리가 살아 남아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자연보호구역인 그레이트 사우스의 블루리버 인근으로 나들이를 나선 날이었습니다. 4륜구동 차량을 멈춘 가이드는 숲길에서 '쿠쿠' 새소리를 내며 카구를 불렀습니다. 운좋게도 카구 가족 4마리가 뒤뚱이며 걸어 나왔고, 멸종 위기의 그 어여쁜 새들을 코앞에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한참을 사진을 찍다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도망갈 줄도 알아야지, 이 바보들아." 탄식도 나왔습니다. 그들은 날개가 있는데 날지 않은 혹독한 죗값을 받고 있었습니다.

문득 제 어깻죽지가 간질거렸습니다. 안락함에 젖은 제 몸에서 퇴화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늘어진 팔다리일까요, 휴대폰과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허둥대야 하는 기억력일까요. 어쩌면 그보다 큰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장 소중한 꿈꾸는 방법 말입니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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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적인 풍광들… 발길 닿는 곳마다 감탄사 릴레이

뉴칼레도니아는 1774년 이 땅을 처음 발견한 스코틀랜드 출신 제임스 쿡 선장이 자신의 고향인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의 옛 지명)와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아름다운 산과 해변이 어우러진 뉴칼레도니아는 1853년 프랑스 식민지가 되면서 프랑스 문화가 많이 유입됐다. 타히티나 피지 등 남태평양의 휴양지에 견줘 뒤지지 않을 바다색을 가지고 있어 많은 이들이 ‘프렌치 파라다이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총 면적은 1만8,575㎢으로 남한의 3분의 1 크기다. 프랑스의 바게뜨 빵처럼 길쭉한 형태로 생긴, 길이 약 400km, 폭 50km의 그랑드 테르(Grande Terre) 섬이 본섬이고, 비행기로 20분 거리에 아름다운 소나무 숲으로 유명한 일데팽(Ile des Pins)이 있다.

그 외에 로열티 군도라 불리는 리푸(Lifou), 마레(Mare), 우베아(Ouvea)를 비롯한 많은 섬들이 저마다의 개성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뉴칼레도니아에는 전체 길이 약 1,600km에 걸친 암초에 둘러싸여 형성된 지상 최대의 석호와 24,000㎢에 달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호초가 있다. 뉴칼레도니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라군은 올해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

뉴칼레도니아 관광의 중심은 수도 누메아. 프랑스의 니스를 옮겨 놓은 듯 프랑스풍이 물씬한 도시다. 누메아 관광 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나절 코스로 떠나는 아메데섬 피크닉이다. 모젤항에서 24km(약 45분 거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등대섬은 1일 관광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일광욕과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좋다.

섬 중앙에는 150년 된 하얀 등대가 서 있다. 247개의 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섬을 둘러싼 남태평양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 산호초에서 많은 배들이 좌초되자 본국인 프랑스에 등대 설립을 요청했고, 1862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이 등대가 세워졌다.

누메아의 우엥토로(Ouen Toro) 언덕은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 곳에는 커다란 대포가 바다를 향해 설치돼 있다. 2차대전 때 미군이 바닷길을 통제하기 위해 실전용으로 배치한 것이다.

누메아의 활기는 이른 아침 모젤항의 새벽 시장에서 퍼져 나온다. 각종 신선한 야채나 과일, 어패류 등이 푸짐하게 매대를 채우고 있다. 카페테리아 주변에서는 무료로 음악 연주나 공연 등을 펼치고, 간단한 기념품이나 선물을 살 수도 있다.

치바우 문화센터(Tjibaou Cultural Center)는 뉴칼레도니아 소나무를 형상화한 전시관이다. 이탈리아의 유명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이 섬의 토착 원주민인 카낙의 문화와 전통,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누메아에서 남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일데팽은 뉴칼레도니아 최고의 관광지다. 소나무 섬이란 이름답게 야자수보다 열대지방에서 보기 드문 침엽수인 소나무가 더 많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소나무는 우리의 소나무와는 모양이 다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젖병솔을 닮았다.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존재한, 전세계 소나무의 조상격이다.

이 소나무와 옥색의 맑은 바다가 빚어내는 풍경이 일데팽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었다. 4km에 걸쳐 펼쳐진 쿠토 해변은 밀가루처럼 하얀 모래가 아름답고, 두 바닷물이 만나는 카누메라 해변은 해변가에 우뚝 솟은 바위가 이색적이다.

일데팽의 하이라이트는 오로베이의 자연풀장(natural pool)이다. 동북쪽 해변에 작은 바위섬들이 둘러싸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풀장이다. 일데팽 최고의 스노클링 포인트다. 잔잔한 물 속에선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노닌다. 가까이 손이라도 내밀면 콕콕 쪼아댄다.

올해 뉴칼레도니아로 가는 직항편이 생겼다. 에어칼린 항공 인천-누메아 직항 노선은 주 2회(화, 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당일 밤 누메아에 도착한다. 비행 시간은 약 9시간 30분 정도.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빠르다. 기온은 연중 따뜻하다. 밤에는 찬바람이 불어 긴팔옷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화폐는 프랑스 퍼시픽 프랑(XPF)를 사용한다. 한국에서 유로나 달러를 가지고 가서 현지에서 환전해야 한다. 최근 환율은 1유로에 약 120XFP이다.

누메아(뉴칼레도니아)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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