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자이프스 지음ㆍ김정아 옮김/문학동네 발행ㆍ440쪽ㆍ1만8,000원
동화를 심각하게 읽다, 그것도 마르크스적 방법론으로 읽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의미있는 작업이다. 독문학자이자 어린이문학 이론가인 잭 자이프스가 그 일을 했다. 1983년 그의 작업이 이 책으로 묶여 나온 뒤 동화는 학문의 대상이 됐다. 동화가 지닌 사회적 기능과 시대사적 함의가 비판적 사고의 대상이 되고, 동화의 흐름을 통해 세계사의 맥을 짚게 됐다. 2006년 발간된 이 책의 개정판이 처음 한글로 번역됐다.
저자는 유년의 기억 속에 각인된 고전들에 분석의 칼을 들이댄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마르크스주의 문학 이론과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이 칼의 날이다. 아름답다, 교훈적이다 따위의 언어로 추켜세워진 동화들이 그 칼에 해부돼 창자를 쏟아낸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빨간 모자> <신데렐라> 에서 저자는 보수적인 성 관념을 읽어낸다. 이 동화들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고결하고 우아하다. 뒤집어 말하면 옷 잘 입고 수동적이며, 결혼을 목적으로 본능을 자제하는 상층계급의 여성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 <엄지 소년 톰> 은 반대다. 재능과 야심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에 성공한 하층계급 출신의 입지전적 남성이 등장한다. 엄지> 장화> 신데렐라> 빨간> 잠자는>
가장 날카로운 분석이 드러나는 대상은 안데르센의 동화다. 그의 동화에는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부유한 지배층을 동경했던 열등감이 굵은 옹이로 박혀 있다. 저자는 안데르센의 지배계급 옹호가 매력을 발휘하는 이유를 피지배층의 심리에서 찾는다. 주인공이 저항적 충동을 부정하고 지배권력을 수용할수록 독자는 더 큰 상실감을 느낀다. 안데르센 동화는 역동적인 긴장과 처절한 감정이입을 유발하는 비굴함을 담고 있다.
디즈니 동화의 유토피아적 판타지도 비판된다. 디즈니에는 약자를 향한 애정이 보이지만 결국 개인주의적 입신 출세로 귀결된다. 그것은 동화 특유의 해방적 활력을 잃은 것이며 문명화의 과정을 거친, 변질된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동화의 미래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그럼에도 긍정적이다. "동화의 역할은 가벼운 오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휴머니티와의 접점을 상실한 문명화 과정의 전복적 대안"이라는 것이 저자의 목소리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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