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 보다 좀 잘난 친구가 필요했어요."
국내 휴대폰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스타급 디자이너의 성공 비결은 의외로 단순했다.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 이민혁(36ㆍ사진) 수석 디자이너의 별명은 '1,000만대의 사나이'다. 삼성전자가 지금껏 배출한 3종의 텐밀리언셀러(1,000만대 판매 제품) 중 2개(벤츠폰, 블루블랙폰) 모델이 그의 손에서 그려졌다.
700만대의 누적 판매고를 올리며 히트 모델로 등극한 '울트라에디션 시리즈 I'의 결정판인 'D900'과 올해 야심작으로 선보인 '소울폰'도 그의 작품이다. 2005년 한 해 동안 삼성전자가 1억대의 휴대폰 판매량을 기록했을 당시, 1억번째로 생산된 휴대폰(D600) 역시 이 연구원의 손에서 잉태됐다. 소울폰은 60만원(출고가격 기준)대 후반의 프리미엄 가격에도 불구하고 출시 6개월 만에 300만대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할 만큼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휴대폰 디자인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일까. 그는 새 작품 구상에 들어갈 때 기존 휴대폰을 절대 둘러보지 않는다. "다른 휴대폰을 보면서 신제품 디자인 구상을 시작하면 아류작 정도의 작품 밖에 그려지지 않아요. 뭔가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품을 기대하기 어렵거든요."
이 연구원이 빚어낸 '블루블랙폰'은 블랙과 화이트 컬러가 주류를 이뤘던 휴대폰 업계에 처음 '블루'라는 새로운 색상을 도입해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휴대폰 외부에 붙어 거추장스럽게 보였던 안테나를 본체 안에 집어 넣어 디자인한 '인테나폰'도 그의 구상에서 나왔다. 인테나폰 아이디어를 냈을 당시, 개발 파트에서는 '안테나를 본체 안에 내장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완강히 반대했지만 며칠 동안 계속된 그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테나폰은 결국 빛을 봤다.
최고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자신이 디자인한 모든 휴대폰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자신 있게 내놓을 만한 휴대폰은 없는 것 같아요.(웃음) 한 개의 휴대폰을 내놓을 때마다 수 백장의 A4 용지에 초기 디자인을 그려대면서 땀을 흘리지만, 막상 제품이 나오고 나면 만족감보단 아쉬움이 더 많거든요."
그래서 일까. 초등학교 시절,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디자이너의 소망을 키워 온 이 연구원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심각한 경향이 있잖아요. 저는 유머감각이 없어서 사람들을 잘 웃기지 못해요. 저보다 조금 잘난 친구 덕에 사람들이 잠시나마 여유를 찾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박한 꿈을 이루려는 이 연구원의 발걸음은 어느 새 연구실로 향하고 있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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