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클릭이 뭐야?" "마우스를 이렇게 두 번 누르는 거에요."
농사일을 마치고 들어와 컴퓨터(PC) 앞에 앉은 강주병(67)씨와 손녀 같은 선생님 유지은(20)씨의 대화가 사뭇 정겹다. "어렵네. 휴~" 유씨가 알려주는 대로 열심히 마우스를 눌러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강씨는 한숨처럼 푸념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매달린다. "이렇게 하면 농촌도 잘 살 수 있다는데 열심히 배워야지." 이마에 굵은 주름을 접어가며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그의 얼굴에는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가득하다.
경기 화성시 장전마을은 논농사, 밭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그런데 요즘 남녀노소 없이 집집마다 PC와 인터넷 공부가 한창이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로부터 인터넷 보급을 위한 정보화마을로 지정돼 40가구 주민들이 PC를 전달 받은 덕분이다. 하지만 정작 PC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무용지물이 될 뻔했다. 마땅히 배울 곳도 없어 한동안 인터넷 세상은 남의 얘기였다.
"PC가 있어도 제대로 다룰 줄을 모르니 농한기가 되면 화투와 술로 소일하기 일쑤였지요. 그러다 보니 도시와 농촌간 정보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 밖에 없고…." 마을 운영위원장(이장)을 맡고 있는 박종하(48)씨의 설명이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박씨가 KT의 IT서포터즈 소식을 듣고 화성 전화국을 통해 도움을 요청한 결과, 대학생 봉사단 소속인 이대 화학과 2학년 유씨가 7월 여름방학을 이용해 달려와 열흘 간 PC와 인터넷 수업을 진행했다.
유씨는 지난해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실시하는 ITQ 자격증을 취득했다. 파워포인트, 액셀, 인터넷 등 PC 활용에 필요한 시험을 통과해야 받을 수 있다.
유씨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마을 주민 집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PC와 인터넷 사용법을 교육했다. 주민들에게 PC 가정교사가 생긴 셈이다. 어르신들을 주로 상대하다 보니 교육 과정은 유씨에게도 삶의 지혜를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르신들이 직접 겪은 한국전쟁과 보릿고개 이야기도 듣고, 어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배울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마을 주민들에게도 발랄한 여대생과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PC와 인터넷을 배우면서 그 동안 이해하기 힘들었던 젊은 세대들을 조금씩 알게 됐어요.
특히 마을 홈페이지(jj.invil.org)에 개설된 게시판을 통해 도시에서 생활하는 젊은 세대와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된 점이 큰 기쁨이요 보람이지요." 강씨는 게시판에 수시로 글을 올려 경험으로 축적된 농사 기법 등을 비교적 젊은 장년층 주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PC와 인터넷은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교 역할도 한다. 박씨는 "동영상 올리는 법을 배워서 마을 행사를 촬영한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오래도록 소식이 없던 동향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며 즐거워했다.
이제 마을 홈페이지 게시판은 이메일과 더불어 주민들의 일상 도구가 됐다. 외지에 나간 자식과 손자들의 안부를 묻고 답하며,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옛 친구의 사진을 보며 추억에 젖기도 한다.
"우리는 요즘 게시판으로 마실을 다녀요. 외지에서 생활하는 고향 친구들과 마을 행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강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지었던 농사를 작물 작황과 비료 투여량 등을 PC에 기록하면서 과학적인 영농이 가능한 점도 커다란 수확이다. 박씨는 엑셀을 익혀 비료 투여량 등을 일일이 계산해 농사에 활용한다.
마을 홈페이지를 통해 도시민들에게 단호박, 옥수수 등 농작물을 판매하면서 주민들의 소득도 늘어났다. "아직은 미미한 수준의 전자상거래이지만 앞으로 관련 공부를 통해 본격적인 전자상거래를 해보고 싶어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으로 농촌이 어려워질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데, 우리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야 하지 않겠어요." 박씨의 각오가 다부지다.
이처럼 PC와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얻은 게 많다 보니 주민들은 교육 기간이 짧은 게 아쉬울 따름이다. 강씨는 "열흘이 후딱 지나갔다"며 "이왕이면 교육 기간을 늘려서 주민들이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박씨도 "요즘 블로그를 많이 한다는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며 "블로그 개설 방법 등 '고급' 활용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씨도 주민들과 함께 한 소중한 경험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세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소통의 의미를 절실히 깨달은 기회였어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국경을 넘어 콘텐츠로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기술 전문가(CT)가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농촌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도 더 열심히 해야지요."
■ KT 'IT서포터즈 대학생 봉사단'
KT의 IT서포터즈 대학생 봉사단은 올해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 400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여름방학 기간을 활용해 열흘 동안 농ㆍ어촌 등 IT 소외지역을 찾아가 인터넷 활용, 홈페이지 제작, 문서작성기 및 이메일 사용법 등을 가르친다.
정규남 KT 상무는 "IT서포터즈 출범 후 1년 6개월 동안 31만여명이 IT활용교육을 받았다"며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봉사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 별도의 대학생 봉사단을 꾸리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봉사활동 참가 열기는 뜨거웠다. 모집 기간 3,373명이 지원해 8.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전국 38개 지역에서 신청을 받아 IT 관련 전공 및 자격증, 지원 동기 등을 보고 400명을 뽑았다.
여름방학(7, 8월)을 이용한 봉사활동이어서 일시 귀국한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조지워싱턴대, 시라큐스대 등 해외 유학생도 많았다.
군 제대를 앞두고 사회생활 경험을 쌓기 위해 마지막 휴가 기간에 봉사 활동에 나선 휴학생, 농촌의 부모님이 생산한 무공해 농산물을 인터넷으로 판매해본 경험을 농촌 주민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참가한 대학생 등 사연도 다양했다.
경기 수원지역에서 대학생 봉사단을 이끈 IT서포터즈의 이상민 팀장은 "봉사 활동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친화력이 있어서 농촌 마을의 노인들과도 쉽게 잘 어울렸다"며 "수혜를 받은 주민은 물론이고 대학생들도 보람을 느껴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KT는 IT서포터즈 대학생 봉사단이 주민들의 호응을 받음에 따라 매년 참가자를 뽑아 운영할 계획이다.
남중수 KT 사장은 "IT서포터즈 대학생 봉사단은 디지털 지식강국을 선도하는 소리 없는 혁명군이나 마찬가지"라며 "정보화 혜택을 받지 못한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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