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진각 사회부 차장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 정책 추진은 위험천만하다.", "정책 시행 과정에서 지나치게 속도를 내서는 안된다.", "경제는 갈수록 커나가는데, 교육 평등만 부르짖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이 추진된 지 6개월을 훌쩍 넘기면서 기대와 우려가 함께 터져나오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은 "교육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하기 마련이지만, 공약에 대한 타당성 검토가 한번쯤 이뤄질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본보는 18일 전문가 5명을 통해 새 정부 교육정책의 현 주소와 문제점, 앞으로의 전망 등을 점검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 새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총평을 해달라.
한재갑(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육정책연구소장)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교육 수요자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방향은 바람직하다. 단 교육 현장 곳곳에 정책이 녹아들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될 요소들이 적지 않다. 학생ㆍ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요인들이 분명 있다.
가령 고교 형태를 다양화하겠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체계만 바꿔놓고 유치원 및 초중고, 대학으로 이어지는 연계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당초 취지인 사교육비 절감은 요원하다.
상징성은 있지만 파편적일 수밖에 없는 여러 공약들을 정책적 측면에서 어떻게 보완해야 할 지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긴 호흡을 갖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도 중요하다고 본다."
조헌섭(유웨이중앙교육 교육개발부장)
"평준화 정책을 기조로 했던 지난 정권과 비교하면 새 정부의 교육 정책은 판이하다. 자율과 경쟁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정책을 뒷받침하는 키워드다. 과거와 차별성이 두드러진 부분이 많아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책의 큰 틀은 타당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지나치게 속도를 내는 것은 아닌 지 우려된다. 특히 교육 현장의 분위기와 반응을 등한시하는 측면이 강하다. 당분간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만중(전국교직원노조 정책실장)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교육 공약 중에서 호감을 이끌어 낸 것은 공교육을 내실화하고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언뜻 시대적 과제를 올바르게 인식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 동안 과정을 보면 정권의 속성을 은폐하는 수사나 다름없다.
현 정부 교육정책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교육의 계층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영어몰입교육이나 초등 일제고사를 부활시킨 문제, 한해 등록금이 1,000만원을 왔다 갔다 하는 학교를 세워 부모의 경제력이 학교의 선택권을 결정짓는 체제를 만든 것 등이 단적인 예다.
이미 한계가 드러난 영미식 교육체계를 모방하려는 의도도 집요하다. 이제라도 정부의 오류를 인정하고 정책의 대전환을 꾀해야 한다."
윤지희(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지난 대선에서 교육 단체들이 대선 후보들의 교육정책을 평가했을 때 사교육비를 가장 증가시킬 후보로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다. 그런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사교육 유발 정책을 그대로 밀고 가는 것은 독선이고 오만이다.
대운하 논란처럼 국민이 반대하면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자율과 경쟁은 겉으로는 좋아보인다. 내용이 문제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과연 다양화를 위한 교육인지 묻고 싶다.
다양화는커녕 획일화이고, 과거 교육으로의 회귀라는 편이 타당하다. 지난 정부들을 거쳐오면서 초등학교 교육은 그나마 나아졌다고 했는데 다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성삼제(교육과학기술부 학교제도기획과장)
"새 정부 들어 여러가지 정책이 실행되고 있어 폭넓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교육을 중시한 사회ㆍ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과 자율, 경쟁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소득 수준은 2만달러인데 교육제도는 1만달러 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조차도 대륙 전역에 국제중이 널려 있는데 서울에 이런 학교 형태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3만달러 시대를 목표로 한다면 앞으로도 교육 논쟁은 피할 수 없다.
사교육 문제, 교육 양극화 문제는 수십년간 논란이 돼온 사안이지만 지금까지는 그냥 파 묻어 뒀다. 그러나 이제 학교교육이 선진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통합도 교육을 거치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 새 정부가 표방한 교육 다양화 정책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한만중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 다양화를 시늉만 낼 뿐이다. 초등 일제고사를 부활시키고 그 결과를 교육정보공개법을 통해 공표하겠다는 것은 입시경쟁에 뛰어들라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결국 서열화로 귀결된다.
국제중을 설립하는 것도 다양화와는 거리가 있다. 한 학교 내에서 여러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이 다양화다. 경제력에 의해 계층별로 나눠서 같은 내용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어떻게 다양화인가. 국민 기만이다."
한재갑
"정책의 방향과 내용이 부합하느냐의 문제인데 자율과 경쟁을 기조로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는 방향은 옳다고 본다. 자율형사립고, 기숙형공립고, 마이스터고 등 학교 체제를 다양화하려는 목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한다고 했을 때, 평가에만 매몰돼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현재 전국단위 학력평가는 시험을 통해 대학과 초중고로 이어지는 다양성을 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교육 프로그램이 별로 없는 탓이다.
다양성은 결국 학생 입장에서 볼 때 맞춤형 교육이다. 수요자가 원하는 것을 학교에서 어떤 방법으로 실현시켜주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처럼 국가 주도의 교육과정으로는 다양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기숙형공립고를 교과부가 일방적으로 선정하면 농ㆍ어촌 지역의 명문대 숫자를 늘리자는 얘기밖에 안된다. 어떤 특성화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지 지역민들과 함께 살펴보고 대상을 선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
조헌섭
"불과 1년 전만해도 자립형사립고는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일선 학교들의 준비과정을 염두에 두지 않고 너무 성급하게 정책을 쏟아낸다는 느낌이다.
6개월 전에 국제중은 용어 자체도 생소했다. 어느날 갑자기 두 곳을 선정하더니 당장 내년부터 운영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어떤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할지 한두 차례 공청회만 열고 끝났다.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 놨다고 하는데 국제중에 들어갈 학생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여러 측면을 유심히 살피지 않은 결과다."
윤지희
"결국 교육 내용, 교육 과정의 다양화로 논의가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제중, 외국어고는 그런 부분을 전혀 구비하지 못했다.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고 명문대를 목표로 하는 입시경쟁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특성이 뚜렷한 학교를 만들어도 입시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수능시험에서 점수 위주 평가를 강화하는 추세를 보라."
- 현 정부 교육 정책의 어떤 부분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보는가.
한재갑
"계급적 관점에서 보면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비판 받을 부분이 많다. 하지만 교육은 복합성이 많은 분야다.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정당한 활동이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어떤 수준인지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
시대적 흐름이 이렇다면 거부할 수 없다. 학교 정보 공개를 서열화나 학력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미술, 음악, 학문적 소양 등 다양한 기준으로 줄세우기를 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본다."
성삼제
"여러 우려들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비판대로라면 정부는 꼼짝도 하지 말아야 한다. 국제중과 자사고는 구체적 운영안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지레 걱정부터 한다. 정부가 가만히 있으면 우리나라 교육이 잘될 것처럼 말한다.
현재 사교육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럴수록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자라나는 세대를 준비하는 과정인데 과연 우리가 미래를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해외 유학을 갔다와서도 국내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현실이다. 국제중이 물론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점을 해소하는 대안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에게 무조건 손을 놓으라고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을 포기하라는 말과 똑같다."
윤지희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얽힌 실타래에서 아무것이나 잡아 끌면 안 된다. 실마리를 잘 골라 잡아서 당겨야 한다. 그 지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다. 교육의 본질이 외면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교육이 잠재력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와 줘야 하는데 우리는 입시 공부에 매몰돼 있을 뿐이다."
한만중
"자율성을 실현한 국가들을 보면 '제어는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지원은 줄이고 통제는 강화하면서 자율로 위장하고 있다. 기초학력 보장을 명분으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한다.
여기에 들이는 돈만 160억원이다. 반면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실시해 오던 교육격차해소 사업 예산은 140억원으로 줄였다. 정부 정책의 본질을 드러내는 실례다."
- 초ㆍ중ㆍ고 학업성취도 평가와 여러 입시에서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문제도 뜨거운 이슈다.
성삼제
"한만중 실장이 언급한 학업성취도 평가와 교육격차해소 사업은 동등한 위치에서 비교할 대상들이 아니다. 평가에 드는 160억의 돈은 소외계층에 할당된 예산에서 빼낸 것이 아니다. 또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은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 예산을 줄여 자생력을 갖도록 애초에 설계됐다.
소외 계층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이미 대학들은 기회균등 선발을 통해 학생을 뽑고 있다. 서울대도 한다. 국제중만 하더라도 사회배려대상자 쿼터가 있다."
윤지희
"국제중 비난이 불거지니 사회배려 대상자 비율을 20%로 슬쩍 올렸다. 그래봤자 국제중이 생겼을 때 미칠 악영향에 비하면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하다. 학업성취도 평가 문제도 그렇다. 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평가를 통해 일정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우리나라의 학업경쟁 실태를 감안하면 굳이 정책적으로 평가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 줄을 세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한재갑
"국가 차원이건 시ㆍ도 단위건 평가는 필요하다. 평가가 불필요하다는 것과 평가는 필요한데 보완을 어떻게 하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평가 결과를 분석해 학력 수준이 부족한 학생이 있으면 집중적으로 지도해야 하고, 뒤쳐진 학교에 대해서는 행ㆍ재정적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 그런 대안 제시가 정부의 몫이다.
자율화라고 하니까 입도선매하듯 대학이 뽑아가지 않느냐. 당연한 속성이다. 평가 프로그램이 없으니 대학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를 우선 뽑고 싶어한다."
- 새 정부 교육정책과 사교육과의 관계도 궁금하다.
성삼제
"대한민국 사교육은 줄넘기까지 과외를 해야 할 정도로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교육 당국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 요소로 학업성취도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려는 것이다. 학생들의 선택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고교를 보라.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문과, 이과라는 하나의 틀에 갇혀 있다. 이제 빗장을 풀어야 한다."
한만중
"사교육은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을 쥐고 흔드는 핵심 세력이다. 이미 한국의 사교육 시장은 외국 자본이 절반 이상을 점령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까지 포화 상태였던 사교육 시장의 문을 초등학교까지 열어 준 정부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사교육비가 어디까지 팽창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최소한의 사회적 논의 기구까지 폐쇄해 버렸다. 대통령 직속 기구였던 교육혁신위원회 등 의견청취기관은 모두 없앴다."
조헌섭
"사교육비에 대해 학부모들이 부담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교육에 대한 정의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 교육을 사교육, 공교육으로 딱 잘라 구분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관점이다. 어느 시대나 사교육은 있어 왔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문제되는 것은 교육 관심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자율을 모토로 한다면 사교육은 결코 적이 아니라 함께 공생해야 하는 존재다. 일본은 공교육을 보조하는 사교육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학원에만 너무 초점을 두면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 장기적으로 정부 교육정책이 어떤 식으로 정립돼야 하나.
윤지희
"교육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사교육은 더욱 그렇다.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첫 단추는 제대로 꿰야 한다. 현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교육 질주에 국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을 하루 빨리 타개해야 한다."
한만중
"교육은 우리나라 저출산의 일정 책임을 떠안고 있다. 교육이 희망을 만들어야 하는데 고통만 주니 아이를 낳기가 두려워진 것이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길러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 과제다.
이제는 결단할 때가 왔다. 많은 이들이 노(NO)를 외치면 정부는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정부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국민 탓을 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성삼제
"우리나라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분야가 교육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학생 개인의 노력과 학부모의 열정이 이만한 교육력을 갖추게 한 원동력이다.
따라서 정부가 교육 주체이자 수요자인 학생ㆍ학부모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일은 당연한 조치이다. 교육을 외면하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은 힘들다. 학교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중지를 모을 시점이 됐다."
정리=김이삭 기자 hiro@hk.co.kr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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