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10년차 김모(38ㆍ서울 송파구 석촌동) 팀장은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밑으로 내려 갔다는 소식에 동네 주유소에 들렀다가 다시 차를 돌려 나오고 말았다. 한 때 배럴당 140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 유가가 30%나 떨어진 만큼 휘발유 가격도 크게 하락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가격이 오히려 더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9월 초 ℓ당 1,850원이라는 가격표를 본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1,880원으로 표시돼 있었다. 김 팀장은 "국제 유가는 떨어졌는데 동네 기름값은 더 오르니 완전히 속은 기분"이라며 "언제까지 차를 주차장에 모셔 두고만 있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국제 유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국내 휘발유 가격은 미동도 않거나 오히려 상승하는 경우마저 생겨 소비자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1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주(9월 2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ℓ당 1,721.03원으로 전주의 평균 판매가 1,715.21원보다 오히려 더 올랐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배럴당 104.53달러에서 97.96달러로 하락했는데도 국내 휘발유 판매가는 거꾸로 상승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환율 때문이다. 유가가 변하지 않더라도 환율이 움직이면 원유 도입가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국내 휘발유 가격은 국제 유가가 아닌 국제 상품가에 따라 연동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또 국제 상품가와 국내 휘발유 판매가 사이엔 2주 정도의 시차가 있다. 따라서 9월 1,2주의 국내 휘발유 가격은 8월 3,4주의 국제 상품가 및 환율이 결정한다.
문제는 당시 환율이 올랐다는 데 있다. 8월 3,4주 국제 유가와 상품가는 거의 변동이 없었던 반면, 원ㆍ달러 환율은 1,040원대에서 1,090원대까지 출렁였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사는 원유 도입가가 올랐다며 9월 1,2주 주유소 공급가를 인상했고, 이 때문에 주유소도 판매가를 올리게 된 것이다. 유가 하락보다 환율 상승이 더 크게 작용한 셈이다. 이에 따라 최근 국제 유가가 80달러 선까지 하락했음에도 같은 기간 원ㆍ달러 환율이 급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2주 후 반영될 국내 주유소 판매가 하락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휘발유 소비자 가격의 44%가 세금인 점도 기름값 하락의 체감도를 낮추고 있다. 현재 휘발유엔 유류세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를 포함, ℓ당 831.02원의 세금이 붙는다. 유가가 30% 내려도 세금은 그대로인 만큼 최종 소비자 가격은 15%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이런 구조는 유가가 급등할 때 상승폭을 제한하는 안전판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결국 소비자 입장에선 기름값이 저절로 떨어지길 기대하기 보단 주유소 종합정보 사이트(www.opinet.co.kr)나 가격 비교 사이트(www.oilpricewatch.com) 등을 통해 한 푼이라도 싼 곳을 찾아 다닐 수 밖에 없다. 18일에도 원ㆍ달러 환율은 37.3원이나 폭등했다. 당분간 동네 주유소 기름값이 떨어지길 기대하긴 힘들 전망이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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