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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금융 시스템 더이상 '교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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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금융 시스템 더이상 '교본'이 아니다

입력
2008.09.1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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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10년간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우리나라가 그대로 본받아야 할 '글로벌 스탠더드'였다. 외환위기 당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 금융당국에 "자금흐름은 투명해야 한다, 망해가는 기업에게 정부지원 하면 안 된다,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라"라는 등의 세심한 훈수를 뒀고, 우리는 한 마디 놓칠 새라 받아 적기에 바빴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 금융당국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프레디맥, 패니메이, AIG 등 부실 금융회사에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지원하며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투명한 자금 흐름을 강조했지만, 첨단 금융공학에 기반한 파생상품은 거미줄처럼 얽혀 그 부실 규모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금융방임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금융감독 당국이 지금의 신용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국을 본떠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시장 친화적 규제'를 지향해온 우리 금융개혁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번 글로벌 신용위기가 파탄 지경까지 이른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미국의 허술한 금융감독시스템 탓이라고 말한다. 특히 감독당국이 기초자산을 2차, 3차로 유동화하는 파생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는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이는 3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파생상품에 대해 그 동안 규제나 감독이 거의 전무했던 미국 특유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례로 파생상품은 일반 유가증권과 성격이 전혀 다른 상품임에도 2004년 들어서야 별도의 등록ㆍ공시 체제를 갖췄다. 또 감독기관이 자산보유자나 인수기관에 파생상품의 기초자산 위험성 등 관련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일견 당연해보이는 권리도 올해 초까진 아예 없었다. 위험보다는 시장 효율성을 강조하는 미국 정부의 방침 때문이었다.

이 같은 폭탄을 안고 있으면서도 30년간 별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2000년 전까지 파생상품에 얽힌 거미줄의 규모가 그리 크거나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1999년 그램-리치-브릴리 법을 도입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법으로 은행, 증권, 보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상업은행도 투자은행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 미국의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액수는 2000년 4,456억달러에서 2006년 1조9,925억달러로 6년 만에 약 550% 급증했다.

시장은 커졌지만 '불완전 유동화'와 같은 제도적 미비점이 여전히 감독의 사각지대에 머물면서 사태를 키웠다. 불완전 유동화란 파생상품을 매각하더라도 나중에 채무가 불이행 됐을 경우 매각자에게 지급 책임이 되돌아 올 수 있는 관행을 뜻한다. 게다가 규제 완화로 헤지펀드, 투자은행, 정부 연기금 등이 모두 파생상품에 얽히게 됐다. 이렇다 보니 서브프라임과 같은 특정 기초자산의 부실이 순식간에 전 금융기관으로 확산되는 소위 '마켓런'(Market Run)이 발생한 것이다.

파생상품의 위험성과 규제 필요성에 대해서는 2000년대 들어 워렌 버핏과 같은 투자가도 경고하고 나설 정도였다. 엔론 사태 이후 학계도 규제 필요성을 토로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귀를 닫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위기는 미국 금융당국이 파생상품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은행과 예금자간 이원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뱅크런'(bank run)에 대해서는 건전성 규제ㆍ지준ㆍ예금보험 등을 통해 위험관리를 하는 반면, 파생상품으로 인한 마켓런 관리장치는 불충분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올해 초 대통령 직속기구를 통해 파생상품 안정성을 위한 권고안을 내기에 이르렀으나 상황을 뒤집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둔 우리나라도 규제 완화에만 방점을 찍을 뿐 감독역량 강화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삼성경제연구소 박현수 연구원은 "우리나라 금융감독은 은행 중심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투자은행,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역량 자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작정 규제 완화부터 할 게 아니라 고도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갖추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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