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내년 9월부터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의 선진국 지수에 이름을 올린다. '신흥 증시'에서 '선진 증시'로 이사를 가게 된 셈. 탈락을 3번이나 반복하다 어렵사리 얻어 낸 열매라서 그런지 시장 안팎에서 '그 맛이 얼마나 달까'라는 기대와 함께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FTSE의 비중이 적어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신흥시장' 한국에 투자했던 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지 모른다는 걱정도 많다.
▲ 업그레이드 효과
무엇보다 시장의 안정성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 크다. 신흥시장(이머징 마켓)에 머문 탓에 늘 덤으로 떠안아야 했던 불안정성을 벗어 던질 수 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보호 신청, 메릴린치 매각 발표 등 미국발(發) 신용위기 태풍 속에서 한국 시장이 다른 나라보다 크게 휘청거린 것도 결국은 불안전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혼란이 일어나도 주가 지수가 좀 더 튼튼한 흐름을 이어갈 수 있고 대외적으로 좀 더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곳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곽병열 대신증권 연구원은 "남북이 갈라진 지정학적 위험 탓에 국가신용등급이 여전히 IMF사태 이전 상태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증시가 선진국으로 올라가면서 간접적으로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연기금, 대학기금 등 중장기적으로 위험 요소가 없는 곳에 투자하는 초대형 기관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면서 대형주 위주로 수급개선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곽중보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선진국 증시 투자자들은 당장 높은 기대수익률을 노리기 보다는 멀리 내다본다"면서 "국내 투자자들 역시 증시를 보는 눈이 좀 더 합리적으로 바뀌는 효과가 있다"고 예상했다.
마찬가지로 제 값을 못 받고 팔아야 했던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탈출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9배. 선진시장(11.6배)과 비교해서 22% 정도 저평가돼 있다. 한국 시장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이익 전망치도 내려가면서 주가 수익비율 같은 밸류에이션 상승이 이뤄질 수 있다.
게다가 3조원에 이르는 유럽계 자금 중 일부가 우리 시장에 새로 들어오면서 유동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신증권은 이날 현재 FTSE 주식 관련 인덱스를 벤치마크로 운용하는 자금 3조원 중 신흥 시장 투자 자금은 1,440억 달러로 추정하면서 한국이 신흥시장을 떠나면서 187억 달러(신흥시장 중 13% 비중)가 빠져나가는 대신 326억~345억 달러(선진시장 중 1.6% 비중)가 들어올 것으로 예측했다. 결국 150억 달러 가까운 새 돈이 한국을 찾아 온다는 것이다.
▲ 만병통치약?
하지만 선진 증시 진출을 무작정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우려도 많다. 무엇보다 최근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이기 때문에 선진증시가 됐다 해도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한치환 대우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침체 탓에 선진 시장에서도 자금이 빠져 나가고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팔자 공세가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7월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2로 올렸을 때도 외국인들은 '팔자' 분위기를 바꾸지 않았다. 신용 위기와 인플레이션 압력이 주식시장을 완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 글로벌 펀드 벤치마크 적용시점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은 걸린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날 주식 시장도 FTSE 선진 시장 진입이라는 '밝은' 소식과 함께 문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32.84포인트(2.3%)나 떨어졌다.
게다가 FTSE를 따르는 펀드가 전체의 5% 밖에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약발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95%는 미국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를 추종한다. 때문에 FTSE 선진 증시 진입의 효과는 MSCI의 선진 지수 편입을 위한 예비고사를 통과했다는 정도로 보는 게 현명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MSCI는 7월 우리나라 등 5개 나라를 대상으로 국가 분류 승격 가능성 검토에 들어갔는데 내년 6월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 FTSE그룹 회장 일문일답/ "3~5% 정도의 지수 상승 기대"
마크 메이크피스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그룹 회장은 18일 한국 증시가 내년 9월부터 FTSE 선진국 지수에 포함된다고 발표하면서 "한국은 전체 선진국지수 포트폴리오의 2%를 차지할 것이고 선진국 지수에 들어가면서 3∼5% 지수 상승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_이번 결정이 편입 기준보다는 현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결과는 아닌가.
"그건 아니다. 4년 동안 국제투자자와 한국 증시 관계자 등과 협의를 해서 결정을 내렸다.최근 2~3년 동안 우리는 한국시장이 해결해야 할 점들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한국은 그 시간 동안 그 문제들을 해결해서 이제는 다른 선진시장과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됐다."
_지난해 지수 편입에 실패했을 때와 지금을 놓고 볼 때 한국 증시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수 편입 여부를 결정할 때 국가 경제의 지위와 시장의 질(quality) 등 2가지를 본다. 한국은 몇 년 동안 국제 사회에서 선진 경제로 인정 받아 왔다. 또 외국 투자자들이 지적했던 대차거래, 대량매매, 분리결제 등을 완전히 해결했다. 장내거래, 외환시장 자율성과 관련해서도 제도 개선 충분히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_지금까지 한국의 외환시장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선진국 지수 편입과 외환시장 제도 개선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한국이 선진국지수에 들어가면 국제 투자자들이 외환 거래를 더 많이 할 것이고 외환시장 마감 이후 역외시장이 만들어지기 위한 분위기도 생긴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