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위기 여파로 패닉 상태에 빠졌던 국내 금융시장이 17일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환율은 1,110원대로 급락 마감했고, 증시는 다시 37포인트 가량 오르며 1,400선을 회복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될 뻔한 AIG에 850억달러를 지원하며 신용위기의 추가 확대를 막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장이 잠시 숨돌리기를 한 것일 뿐 언제든 ‘피의 화요일’을 재현할 수 있는 불안 요인들이 산적해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위기는 끝났다’는 섣부른 진단보다는 위기 재발 가능성을 꼼꼼하게 되짚어 보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용위기 과연 끝인가
구제금융을 통해 AIG라는 대형 산불을 초반에 진압하긴 했지만 제2의 리먼이 될 수 있는 미국 금융회사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게 첫번째 불안 요인이다.
현재 미국 최대 저축대부조합인 워싱턴뮤츄얼이 또 다른 ‘뇌관’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 워싱턴뮤츄얼은 지난 주 신용평가기관 S&P가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으로 바꾸면서 프레디맥처럼 정부 산하로 편입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미국 5위권의 상업은행인 와코비아도 모기지 부실이 상당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대출부실이 부동산에서 그치지 않고 막대한 금액의 신용카드와 학자금 대출, 자동차 할부금융 등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가구당 평균 카드빚은 7월 현재 8,565달러. 주택을 담보로 받은 가계대출(홈 에쿼티 론)이 1만62달러, 자동차 및 학자금 대출이 1만4,414달러에 이른다. LG경제연구원 정성태 선임연구원은 “대출 부실이 모기지 외로 일파만파 확대될 경우 이미 거론된 1,000여개 지방은행을 포함한 대형 상업은행까지 부실화될 수 있으며, 이는 밑바닥 가계 및 소매금융의 파탄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레디맥, 패니메이, AIG 등과 같이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들도 꺼진 불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하나대투증권에 따르면 AIG가 신용등급 하락 위협에 따라 추가로 신용디폴트스와프(CDSㆍ기업에 돈을 꿔준 금융사가 돈을 못 받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입하는 일종의 보험계약) 증거금으로 당장 충당해야 하는 금액은 무려 13조원. 우선 850억달러를 지원 받더라도 앞으로 얼마나 돈이 더 필요할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정 연구원은 “구제금융 정책은 결국 엄청난 조세부담을 전제로 하는 만큼 여론악화를 불러올 수 있고, 잠재적 부실규모가 너무 커서 정부도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에서 끝날까
미국의 신용위기는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에 금융사나 부동산에 투자한 액수가 많은 유럽 금융사들이 먼저 흔들리고 있다. 스위스의 금융사 UBS는 작년 미국 주택저당증권(MBS)에 투자했다가 올해 초 380억달러 손실을 낸 끝에 500억달러 자산을 상각해야 했다. 독일 도이치방크 역시 130억달러를 상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부동산 버블이 심했던 영국은 더 심각하다. 16일 최대 모기지은행인 핼리팩스은행(HBOS)의 주가는 40% 이상,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의 주가가 10% 이상 급락하는 등 금융주 전체가 붕괴하는 양상이다. 경영자문사 해이그룹(Hay Group)은 현재의 금융위기로 인해 영국 내 금융인 약 11만1,000명이 실직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최근 올림픽을 무사히 끝내고 미국 부실은행 투자금도 서둘러 회수했지만 증시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국도 복병이다. 메리츠증권 심재엽 연구원은 “증시 및 환율 등 지수는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전세계적인 잔존 리스크가 해소된 상황이 아니며, 실물경제로의 전이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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