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교육청이 내달부터 지역 전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실시키로 해 주목된다. 강남교육청은 "우리 말의 70%가 한자 조합으로 이뤄져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초등학교때부터 한자를 익힐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현행 초등 단계에서는 한글전용 정책이 유지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교육계에서는 강남교육청의 결정에 따라 한동안 잠잠했던 초등 한자교육 적절성 논란이 재점화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강남교육청이 한자교육 관련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기로 한 것도 국제중 입시 등과 맞물려 사교육 조장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 고학년 대상 한자교육
초등 한자교육 대상은 4~6학년 고학년이다. 강남교육청측은 "아침 자습이나 국어과목 시간을 활용해 한자를 가르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육청은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고 한자 교육이 문법 위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단어 이해와 의사 소통에 필수적인 900자 정도의 기초한자만 익히게 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낱말 쓰기 등을 담은 자체 교재(워크북)를 제작 중이다. 교육청은 조만간 교사 연수를 준비하고, 학년 말에는 성취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한자검정시험이나 한자경시대회 등 검증단계를 거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초등학교 정식 교육과정에는 한자 과목이 없다. 하지만 한자를 알아야 한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논술 대비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영어, 수학, 예ㆍ체능 등 과목과 함께 사교육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초등 2학년 아들을 둔 최은옥(41ㆍ여)씨는 "같은 아파트에 어떤 아이가 '한자 시험에서 몇 급을 받았다더라'는 소문이 퍼지면 너나 할 것 없이 금세 따라하게 된다"고 말했다.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관련 학원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가정에서 한자 익히기를 도와주는 과외가 신종 직업으로 등장했을 정도다.
최근에는 초등생들 사이에 한자 급수따기 열풍도 유행처럼 번지는 양상이다. 한자능력검정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어문회에 따르면 지난해 이 시험에 응시한 초등생 수는 50만명 선. 올해 초등 재학생 수인 367만여명의 13.5%에 해당하는 수치다. 공인 자격증이 주어지는 4급 이상(1,500~3,500자) 시험 응시자도 2만5,000여명이나 됐다.
■ 논란 재연될 듯
사실 초등 한자 교육에 대한 필요성은 그 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02년에는 전직 교육부 장관 13명이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교육을 실시할 것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는 "초등학교에서는 한자 교육과정이 아예 없어서 못 배우고 중ㆍ고교에서는 선택과목이라 한자를 멀리하는게 현실"이라며 "일상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 조합으로 이뤄졌는데도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기 위한 도구를 버려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성기진 한글학회 책임연구원은 "현 정부 들어 영어까지 숭상하는 풍조가 만연하면서 우리 말과 글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초등학교 단계부터 한자를 가르치게 되면 한글의 정체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자가 사교육 시장에 편입되면서 학교 한자 교육이 학부모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경복 강남교육장은 "사교육이 점령하고 있는 한자 교육을 학교가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사전에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교육 주체들로부터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한 내용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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