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사는 김철규(49ㆍ건설업)씨는 요즘 오페라와 '열애중'이다. 사무실이나 차 안에서는 물론, 길을 걷다가도 유명 오페라의 아리아를 흥얼거린다.
"대학 졸업 후에는 연극 한 편 본 일이 없을 만큼 공연과는 담 쌓고 살았다"는 그는 올 4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브런치 오페라' 공연을 관람한 뒤 오페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용기를 내 2개월짜리 '오페라교실'을 수강한 그는 최근 골프도 때려치우고 본격적인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김씨는 "10월 한 달 내내 오페라의 대향연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대구가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대구 국제 오페라축제'의 성공을 발판으로 '오페라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의 개관과 함께 첫 막을 올린 '대구 국제 오페라축제'는 오페라만으로 꾸미는 음악축제로는 아시아에서 유일하다. 명실상부한 '국제' 축제로 자리매김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90%를 웃도는 유료관객 점유율을 자랑하며 내실을 다져가고 있다.
가장 큰 수확은 오페라 인구의 저변 확대. 아버지가 퇴근 후 집에 와서 하는 말이라곤 "아~는(아이들은), 밥 도(밥 차려줘), 자자" 세 마디뿐이라는 우스개가 떠돌 정도로 대구 사람들의 기질은 무뚝뚝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지역에서 김씨의 경우처럼 오페라가 '보는 공연'을 넘어 시민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에 대해, 대구 시민들 스스로가 "기적에 가깝다"고 말한다.
첫 걸음은 힘겨웠다. 대구광역시가 부산국제영화제, 광주비엔날레 등처럼 대구를 세계에 알릴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오페라축제를 들고 나왔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페라하우스 하나 지어놓고 대구에서 '국제' 축제를 열겠다니 무모한 도전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어렵사리 첫 축제의 막이 올랐지만,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반응도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오페라계의 한 관계자는 "공연이 끝나면 커튼콜은커녕 용감하게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던 한, 두 명의 관객마저 결국 어색하게 자리에 주저앉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람료를 1만~7만원으로 낮추는 대신, '초대권을 남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내실을 다져가자는 주최측의 전략은 적중했다.
2003년 1만1,588명이던 관람객은 2005년 1만4,224명, 2006년 1만7,650명, 지난해 2만1,649명 등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객석점유율이 88%에 달하고, 70%에 머물던 유료관객 비율도 91.3%(1만9,775명)로 치솟아 축제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오페라축제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로는 풍부한 음악 인프라가 꼽힌다. 무엇보다 경북대와 영남대, 계명대, 대구가톨릭대, 대신대 등 5개 대학에 성악과가 개설돼 서울 못지않게 풍부한 음악인을 배출해왔다.
또 1,508석의 대구오페라하우스와 지난해 문을 연 수성 아트피아, 올 가을 개관하는 2,000석 규모의 계명아트센터 등 대형 극장시설도 수도권에 버금간다.
여기에 지역 기업들의 활발한 '메세나 운동'도 일조했다. 메세나 운동이란 기업이 문화와 예술, 스포츠 등에 대한 지원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지난해의 경우 대구은행 행원과 가족 1,352명이 예매를 통해 단체관람을 하는 등 16개 기업ㆍ단체가 전체 유료관람 1만9,775표의 23%인 4,545표를 소화했다.
올해 축제에서도 삼성카드와 대구보건대가 각각 개막작인 푸치니의 '토스카' 공연 하루치 전 좌석을 예매하는 등 가을 야유회를 오페라 관람으로 대체하는 기업, 대학들이 늘고 있다.
10월 1일 개막해 39일간 열리는 제6회 대구 국제 오페라축제의 주제는 'Via Corea, Viva Opera!'(한국을 통해, 오페라여 영원하라!)다. 한국 오페라 60주년, 푸치니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 것인데, 세계적인 '오페라 도시'로의 비상을 꿈꾸는 대구의 희망을 담고 있기도 하다.
남성희 대구국제오페라축제조직위원장은 "오페라교실 수강생들이 축제의 유료관객으로 이어지는 등 오페라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 "시민들이 마당놀이처럼 편안하게 오페라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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