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모든 나무의 생명의 근원이다. 뿌리를 통해 섭취한 영양분으로 줄기와 잎, 꽃, 열매를 맺는다. 뿌리가 죽으면 그 나무는 죽는다. 뿌리가 살아 있으면 그 나무는 언젠가는 살아나게 되고 줄기와 잎과 그리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문화는 인류의 정신적 활동의 결과물이다. 모든 분야에서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핵심적인 요소는 지식과 정보다. 어떤 분야의 지식과 정보가 보존, 계승되지 못한다면 그 분야의 문화는 뿌리 없는 나무처럼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지식과 정보가 활발하게 유통되는 사회에서는 뿌리가 튼튼한 나무처럼 문화가 성장 발전할 것이다.
우리는 고급문화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것은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ㆍ1822~1888)의 문화개념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문화란 완전한 인간을 지향하는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 즉 참다운 인간을 조성하는 진, 선, 미만을 문화적 의미 안에 두었다. 선진국의 고급문화란 그 사회의 문화에서 지식과 정보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문화의 계승 발전이 잘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도서관은 우리사회에서 지식과 정보의 유통을 맡은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장치이다. 신문, 방송, 출판, 인터넷 등도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장치이다. 도서관은 이들과 어떻게 다른가. 도서관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정보자료를 보존, 제공한 기관이다. 정보의 유통은 정보의 보존을 전제한다. 도서관은 정보자료를 가장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보존, 관리해 온 가장 큰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장치이다.
지식과 정보를 가장 체계적으로 풍부하게 제공하는 사회적 기관은 도서관이다. 다른 커뮤니케이션 장치의 정보 제공자들이 도서관을 이용해 정보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의 고급문화는 그 사회의 저변에 도서관을 두고 있다. 지식과 정보를 문화의 뿌리라고 한 말은 도서관을 문화의 뿌리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우리사회는 그 동안 경제발전에 관심과 노력을 집중하면서 도서관이라는 사회적 기관에는 소흘히 해왔다. 근래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경제수준 향상 등으로 문화에 대한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 일기 시작하면서 도서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다. 도서관이 왜 있어야 하는지, 무엇을 우리사회에 할 수 있는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도서관은 모든 분야의 문화를 향상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관이다. 뿌리는 나무의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뿌리가 밖으로 화려하게 드러나 보인다면 그 나무는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도서관을 문화의 뿌리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도서관 활동의 영향과 결과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택시 안에서 베토벤이나 황병기의 음악을 쉽게 만날 수 있고, 박경리가 타계한 날 여기저기서 <토지> 에 대한 대화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면, 중국집 자장면 배달원이 내 연구실에 배달 왔다가 벽에 걸린 세한도(歲寒圖)를 보고 추사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도서관이 뿌리인 고급문화의 사회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토지>
서진원 전북대교수ㆍ문헌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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