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시장 정상화에는 1, 2개월이 아니라 최소 2~3년이 걸릴 겁니다. 지금은 월스트리트(금융시장)를 넘어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로의 위기 확산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미국 금융시장은 지금 유례없는 홍역을 앓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미국 최대 보험사 AIG에 대규모 구제금융에 나서기로 하면서 다소 진정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美 금융시장 정상화 최소 2~3년"
미국 경제 전문가인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전 LA한미은행장)는 17일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미국 금융위기는 시작도, 끝도 아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몇 년간 크고 작은 진통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 미 FRB가 예상과 달리 금리를 동결했는데.
“지금 미국 경제에서 부족한 것은 유동성이 아니고 신용이다. 유동성은 많지만 파이프라인이 막혀서 돈이 돌지 않는 것이 문제다. 결국 해법은 막힌 파이프라인을 뚫는 것이지 금리를 내려 유동성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리먼브러더스와 달리 AIG는 결국 구제를 했다.
“AIG가 파산을 할 경우 충격은 리먼브러더스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 지점을 가지고 있고, 다루는 금융상품의 범위도 훨씬 넓다. 더구나 AIG가 파산을 하면 기관 뿐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여기에 AIG는 담보로 맡길 좋은 자산이 많기 때문에 FRB가 구제에 나설 수 있었다고 본다.”
-AIG는 위기를 넘겼지만, 여전히 다음 타자가 누구냐에 관심이 많다.
“맞다. 지금 금융위기는 시작도, 끝도 아니다. 여전히 진행형이다. 걱정이 되는 곳은 워싱턴뮤추얼, 와코비아, 그리고 유럽의 UBS 등이다. 이런 대형 금융회사 외에도 미국 내 자그만 은행들은 더 위험하다. 문제는 월스트리트(대형 금융기관이 몰려있는 금융시장)를 넘어 메인스트리트(조그만 가게들이 밀집한 거리ㆍ실물 경제)로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 미국 금융회사들이 증자를 하고 빚을 줄이는 등의 리레버리지(자산 회수)에 나서야 금융시장이 정상화할 수 있다. 하지만 1, 2개월이 걸릴 문제가 아니다. 최소 2~3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한국이 유독 미국 금융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한국은 국제화가 많이 된 나라다. 외국 투자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고, 수출 의존도도 상당히 높다. 그만큼 외부 충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금융 위기가 생기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돈 버는 것보다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5대 투자은행(IB) 중 3곳이 무너졌다. 투자은행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진단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항공회사를 봐도 대형회사도 있고 조그만 회사들도 많다. 월가에 이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대형 IB는 두 곳밖에 남지 않았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영업하는 지역 IB는 수없이 많다. 앞으로 이런 조그만 IB들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또한 지금은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구분하기 어렵다. 상업은행이라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메릴린치가 하는 업무를 모두 할 수 있다. IB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보는 건 옳지 않다.”
- 일각에선 세계 금융의 중심이 뉴욕에서 런던으로 이동할 거라는 전망도 나오는데.
“역시 잘못된 전망이다.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졌다고 뉴욕에 서비스를 제공할 금융회사가 없는 게 아니다. 지금도 충분하다. 여전히 뉴욕에 몰려있는 고객들이 런던까지 쫓아가서 금융 서비스를 받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뉴욕은 앞으로도 세계 금융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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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황 메릴린치 국제금융자문관 "진짜 위기는 시작도 안해…"
“메릴린치가 BoA에 합병된 것은 정말 잘된 일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부도났을 겁니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미 최대 증권사 메릴린치에서 PB분야의‘잘 나가는’ 국제금융자문관인 피터 황(사진)은 메릴린치의 간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오히려 “환영한다”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2001년 삼성증권 뉴욕법인장으로 부임했다가 월가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메릴린치에 몸 담은 그는 PB 본부에서 수익률 1, 2위를 다투는 자산운영가이다.
삼성생명 사장과 삼성카드 부회장을 지낸 황학수씨가 부친으로, 외환위기 당시에는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구조조정 업무에 관여했다. 16일(현지시간) 미 금융위기의 태풍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는 메릴린치의 뉴욕 맨해튼 본사 24층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메릴린치로서는 나쁠 게 없죠. 재무구조 좋아지고, 상품구조 다양해지고. 오히려 BoA 입장에서 70%나 되는 프리미엄 주고 산 것에 불만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망하게 놔두면 나중에 그냥 주울 수 있는데. 그래서 누가 (합병을) 조종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세력이 미국 정부 당국이냐는 질문에 그는 “내놓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뻔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메릴린치 최대 주주가 싱가포르테마섹(싱가포르 국부펀드)입니다. 테마섹이 미국에 투자를 많이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합니다. 돈이 필요한 미국의 정책 당국자는 그런 고민을 했을 겁니다. 월가에서는 베어스턴스를 왜 망하게 했을까에 대한 여러 음모론이 있습니다. 우선은 리먼 브러더스 회장이나 베어스턴스 회장이 월가에서 대표적으로 평판 나쁜 회장들입니다. 베어스턴스 회장은 정부 당국자들과의 회의에서 시가를 물고, 맘에 안 들면 연기를 그 사람 얼굴에 훅 불고 나갈 정도로 자신만만했습니다. 적을 많이 만든 거죠. 영국의 돈 많은 귀족들이 주주인 베어스턴스는 국부펀드 같은 영향력 있는 주주가 없었습니다. 리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합병과정에서 존 테인 메릴린치 회장의 생존술을 높이 평가했다.
“시장의 리듬을 빨리, 정확하게 읽었습니다. 리먼을 정부가 끝까지 내치는 것을 보고 BoA에 바로 전화해 합병하자고 했죠. 만약 리먼을 살렸다면 테인 회장도 메릴린치를 내주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미국의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가 문제가 된 것은 주택입니다. 상업용(커머셜) 빌딩은 거론되지도 않았죠. 메릴린치만 해도 커머셜 빌딩 모기지 채권을 엄청나게 갖고 있습니다. 경기 여파가 커머셜 빌딩에까지 미쳐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신용디폴트스와프(CDS)에 연쇄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꼬리를 흐린 그는 이날 미 정부로부터 긴급 유동성 지원을 받은 AIG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했다. 직원을 불러 자료를 찾아오게 한 그는 AIG가 한때 프리미엄 받고 CDS를 팔아 많은 돈을 벌었으나 서브프라임 사태로 리스크가 늘어난 것이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CDS 판매 규모가 4,400억달러인데, 이중 580달러가 서브프라임모기지와 관련된 것이라며 최소 몇 백억달러는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를 미국식 대마불사론으로 해석했다. 한국이 암에 걸렸을 때는 수술을 요구한 미국이 자신이 암에 걸렸을 때는 약만 먹고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약처방의 이유로 한국보다 체력이 좋다는 점을 댔습니다. 전이되면 더 센 약을 먹이고요. 내성이 생기니 할 수 없이 리먼은 수술했지만,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도 다 수술하자니 상처가 깊어 죽을 것 같아 다시 약 처방으로 돈 것입니다.”
그는 9월 위기설에 휩싸였던 한국의 경제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환율도 지금보다 훨씬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직접 언급하지 말라는 전제 하에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한국 정부가 최근 외평채 발행을 연기한 것에 대해서도 “산업은행이 리먼과의 협상 중단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이후 한국에 대한 월가의 시각이 냉랭해진 것”을 한 요인으로 제시했다.
뉴욕=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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