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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박정희와 인간 지각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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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박정희와 인간 지각의 한계

입력
2008.09.1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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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논란이 있지만 박정희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주도한 것은 틀림없다. 단, 경제성장이 그 혼자의 공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공이고, 이에 외국의 도움, 팽창하던 세계 경제 환경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인권 탄압을 자행하였다.

그러면 당시 정권과 어용학자들이 주장한 대로 경제성장을 위해 그런 민주주의의 '유보'가 반드시 필요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경제 성장과 정권 형태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개발도상국의 경우를 보면 대체로 권위주의 통치와 경제성장이 같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개발도상국에서 민주주의가 안 되고 있다는 증거이지, 권위주의가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이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 민주 압살하며 경제성장 주도

그러면 박정희 정부가 민주 절차를 지켰다면 산업화를 못 이루었을까? 이 질문은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군부 출신에다 장기 집권욕에 사로잡힌 박정희가 민주 절차를 지킬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민주 정부였던 장면 정부는 어땠는가? 그 정부가 쿠데타 전에 경제 부흥 계획을 세우고 박정희와 비슷한 시도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역량(지도자나 정치구조)으로 볼 때, 무력으로 쓰러지지 않았더라도 박정희와 같은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당시 한국의 역학관계를 볼 때 군부 변란을 피할 수 없었다고 본다. 하지만 박정희가 인권 탄압을 일삼고 장기집권체제를 확립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경제성장에도 꼭 필요하지 않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박정희를 대체로 높이 평가한다. 나이 든 사람들 중에도 물론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 까닭으로 지금의 '혼란상'을 많이 든다.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그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사람들의 지각 능력 부족에서 온 면이 많다.

그가 주도한 경제 개발의 과실은 지금 우리가 고스란히 누리고 있다. 박정희 이후 우리 국민과 정부 모두 착실히 잘 해 온 결과다. 경제 위기니 뭐니 많이 떠들지만, 그 얘기 들은 것이 벌써 20년이니 위기가 아니라 정상 상태다. 박정희 경제 개발의 과실이 우리 손에 고스란히 있으니, 그런 면에서 박정희의 공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박정희의 죄과인 민주주의 말살과 인권 탄압은 민주화 때문에 다 사라졌다. 박정희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그러면 당신은 유신 시대로 돌아가기를 원하는가? 일부 군인이나 정보부 요원이나 고위 관료들 아니면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잊어 먹어서 그렇지 머리카락도 제 맘대로 못 기르고 술집에서 정치 얘기도 두려워 못하는 암흑시대로 정말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니, 안 돌아간다고 해도, 박정희가 민주주의의 시계를 되돌린 그 해악을 모르는가?

■ 지금은 잊었거나 몰라서 찬양

모른다. 다 잊어먹었거나 아예 겪지를 못했다. 그러니 국민이 피눈물 나게 싸워서 쟁취한 민주주의와 자유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의 해악은 피부에 와 닿지 않을 뿐 아니라, 젊은이들은 처음부터 아예 모른다. 경제 개발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고, 군사 독재는 사라진 것이다. 박정희의 공은 지금도 남아 있고 박정희의 죄는 사라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히 박정희의 공만 기억하고 죄는 잊거나 모르게 된다. 인간 지각 능력의 근본 한계다. 그래서 사람들은 박정희를 기린다. 개발독재자는 인간 한계의 덕을 보는 행운아다. 민주투사는 그 공이 잊혀지게 되어 있는 불운아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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