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이하여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더욱 실감이 났다. 어릴 적 철없이 뛰놀며 손꼽아 기다리던 추석이었건만 이제는 여느 휴일처럼 별다른 감흥이 없다. 멀리 떠나온 고향에는 이제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가재 잡고 버들피리 불던 앞들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뒷산 허리를 둘러 구마고속도로가 지나가는 통에 평화롭던 농촌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은하수를 보면서 미래를 꿈꾸게 했던 맑고 푸르던 하늘은 이제 별 하나 찾기 어려워졌고, 언제나 풍덩풍덩 미역을 감던 낙동강 중ㆍ하류의 맑은 물과 빛나던 백사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리 둘러봐도 어느 하나 옛날의 아름답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들판 그 친구들 다 어디 갔나
누군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해도 추억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젠 어릴 적 추억마저도 가물가물하다. 자장면 곱빼기 한 그릇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고, 길거리에서 파는 호박 엿 한 조각, 눈깔사탕 하나 살 돈이 없어서 침만 삼키며 그냥 지나가야 했던 그 시절의 가난도 잊어버린 지 오래다.
어릴 적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는지 소식마저도 감감하고,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안타까운 친구들도 하나 둘씩 늘어만 간다. 초등학교 동창들의 자녀 결혼 소식이나 존속의 사망 소식도 몇 년이 지나서야 바람결에 들려오기도 한다. 어느덧 쉽게 인생 무상을 느끼기도 하고, 깨달음을 좇아 출가한 사람들의 용기가 종종 부러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마냥 넋두리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 세대도 너무나 빨리 변해왔지만 우리 자녀들의 세대는 더욱 빨리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은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고, 우리가 살고 있으며,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곳이다. 부모님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듯이, 우리의 노력과 희생 여하에 따라 자녀들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10년, 20년, 3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세계화는 더욱 급진전될 것이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은 더욱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는 국가나 지역에 따라 다소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단순히 다가오는 것만이 아니다. 미래는 우리가 개척하고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계획과 의지와 노력으로 미래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세계화는 진전될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나아가기 위한 계획과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선진화는 불가능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여러 지역에는 자동차가 없는 곳도 많이 있고, 언론의 자유가 없는 독재국가도 많이 있다. 동시에 어린 시절의 맑고 푸르고 깨끗했던 우리의 금수강산보다 더 맑고 푸르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유지하면서도, 우리보다 더 풍요롭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선진 국가들도 많이 있다. 미래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보다 기쁨과 기대감이 더 커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함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 창조에 최선을 다해야
추석을 맞이하여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세월의 빠름과 무상함을 느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겨 본 것은 나름대로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우리가 마냥 과거와 추억에 빠져 살 수만은 없다. 21세기 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지속 가능한 성장을 통해 선진 일류국가로 발전하여 행복한 미래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미래를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순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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