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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법률문화상 받는 윤후정 이화학당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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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법률문화상 받는 윤후정 이화학당 이사장

입력
2008.09.17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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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여성 ‘선각자’들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윤후정(76) 이화학당 이사장은 아무도 가지 않은 하얀 눈밭에 뒷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될 또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뚜벅뚜벅 걸어왔다. 한국 최초의 여성 헌법학자, 초대 한국여성학회장,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초대 위원장…. 한 평생 ‘여성 최초’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산 그이지만, 발자국 하나 허투루 낼 수 없었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 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950년 여성 법학도로, 그것도 헌법학도로 첫 발을 디딘 이후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척박했지요. 여성이 부덕(婦德ㆍ부녀자의 아름다운 덕행)의 존재로서만 인식되던 시절에 양성 평등을 관념만이 아니라 제도적 질서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17일 제4회 영산법률문화상을 받는 윤 이사장은 “그 척박한 시절을 지나 여성 법학교육, 여성법조인 양성, 양성평등의 제도화 등이 여성의 인권 신장뿐 아니라 이 사회의 법치주의 문화 향상에 보탬이 됨을 인정 받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고 시절 윤 이사장은 “국가 주권을 확립하고 여성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인을 꿈꿨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피란지 부산에서 인연을 맺은 고 강원용 목사는 “진정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면 법학을 공부하라”고 조언했고, 그 가르침은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삶의 이정표가 됐다. 사법시험의 유혹을 뿌리치고 학계에 남았고, 이후 여러 차례 정치권의 ‘러브 콜’을 받았지만 강단을 지켰다.

윤 이사장은 여성 법조인을 길러내는 데 남다른 공을 들였다. 이화여대는 75년 첫 사법시험 합격자를 배출한 이후 2005년부터는 매년 50명 이상을 합격시키고 있다. 현재 이화여대 출신 법조인은 368명. 올해 1차 합격자 수는 160명으로, 전국 대학 가운데 4위다.

윤 이사장은 이 같은 성과를 낸 비결을 “우수한 학생, 유능한 교수, 면학 분위기 조성의 3위 일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 명문 고교를 직접 찾아 다니며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였고, 79년 법대 학장을 맡은 뒤로는 ‘법정 동문의 밤’을 통해 발전 후원금을 모금해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인맥 때문에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지 못하는 것은 등록금 내는 학생들에게 죄 짓는 것”이라며 교수 채용 시 학맥, 인맥 따지던 관행을 뿌리뽑는데도 온 힘을 다했다.

정치인의 꿈도 접고, 사법시험의 유혹도 뿌리치고, 20대 후반부터 50여년을 오롯이 강단을 지켜온 법학자. 윤 이사장은 그런 자신의 삶에 대해 “아쉬움이 없다”고 했다. “그 동안 길러낸 제자 2,000여명이 법조계, 학계, 정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저의 어릴 적 꿈을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지 않습니까.”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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