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인생의 비루한 삶과 상업예술의 대명사인 뮤지컬이 만났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파이란'(연출 김규종)은 최민식 주연의 동명 원작 영화(2001)가 그랬듯 웃음과 눈물의 변주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삶의 끝장에서 중국 여인 파이란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담긴 편지를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얻는 3류 건달 강재의 이야기는 시적인 가사의 노래, 현악기의 선율이 돋보이는 7인조 라이브 밴드의 연주, 재기 발랄한 안무와 만나 묘한 매력을 뿜어냈다.
일단 극은 영화를 원작으로 한 소위 '무비컬'들이 그동안 범해 왔던, 영화의 화법을 답습하는 오류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듯 보인다. 특히 동일 장소 다른 시점의 사건을 한 무대에 올리는 등 무대예술의 장점을 살린 연출 시도가 신선했다.
현재 시점의 사건인 파이란의 시신을 확인하러 가는 강재의 여행길과, 돈을 벌기 위해 낯선 땅에 왔지만 호적상으로나마 남편이 되어준 강재를 그리며 어려움을 이겨내는 파이란의 삶 즉 과거는 한 장면씩 교차 진행되다 결국 신발을 매개로 한 무대에서 동시에 그려진다.
강재가 파이란이 유품으로 남긴 구두를 꺼내 확인하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 바로 옆에는 강재를 위해 구두를 포장하는 파이란이 있다.
강재 역의 서범석은 흡인력 있는 연기로, 파이란 역을 맡은 중국 여배우 인요우찬은 서툰 한국어와 가녀린 외모 그 자체로 감동을 끌어냈고, 멀티맨(김동현)을 비롯한 앙상블의 활약 덕분에 때로 객석에선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러나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한 점은 이 작품의 장점이자 단점이 돼 버렸다. 뮤지컬 장르의 특성상 지루함을 경계한 탓인지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과정에서 두 주인공의 절절한 사랑도, 3류 인생 강재의 극적인 심리 변화도 비약을 피할 수 없었다.
모호한 시대적 배경 설정이나,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강재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파이란의 중국어 노래를 자막 처리하지 않은 것도 관객 입장에서는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쇼' 대신 '드라마'를 택한 한국형 뮤지컬 '파이란'은 초연인 까닭에 아쉬움도 많지만 인간미 넘치는 스토리를 무기로 다양한 계층의 관객에게 감동을 안길 작품인 것만은 틀림없다. 11월 2일까지 대학로문화공간 이다 1관. (02)744-0300
김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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