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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월街 잿더미 속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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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월街 잿더미 속의 교훈

입력
2008.09.1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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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장벽(wall)'이었던 월스트리트(Wall street)가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져버리게 된 까닭을 놓고 몇 가지 해석이 따른다.

첫째, PC저주설. 어느 침대CF를 패러디하자면, '금융은 경제학이 아니다. 수학과 공학이다.'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등 세계적 투자은행(IB)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파생금융상품이었다. 발단은 서브프라임이었지만 하나의 모기지는 수학ㆍ공학적 기법을 통해 변형ㆍ분할ㆍ통합과정을 거치면서 수십~수백가지 파생상품으로 재탄생했고, 그 결과 늘어난 상품 수 만큼 부실규모도 함께 커졌던 것이다.

금융의 수학화, 공학화는 PC 덕분이었다. 전산화된 모델에 의해 상품이 만들어지고, 컴퓨터 버튼만으로 거래가 완결됐다. 월스트리트의 외연을 세계로 넓혀준 IT발전은 분명 '축복'이었지만, 부실과 손실까지도 함께 첨단화ㆍ세계화 시켰다는 점에서 '재앙'이기도 했다.

둘째, 보너스 경쟁설. 돈이 넘치는 곳에 인재도 넘치는 법이다. 내로라 하는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변호사 회계사들이 월스트리트로 몰려들었다.

IB는 철저한 성과급제였다. 투자를 잘해 많은 돈을 회사에 안겨주면 초고액 보너스를, 그렇게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 지독한 '정글시스템'이었다. 더구나 짧은 직업수명 탓에 단번에 평생자금을 모아야 하는 구조다. 이런 환경에서 만약 옆 친구가 100만달러 보너스를 받았는데 내 연봉은 10만달러 뿐이라면? 똑똑한 아이비리거들은 더 많은 보너스를 위해 수학ㆍ공학을 총동원한 파생상품들을 짜냈고, 베팅도 늘려갔다. 그러다 다다른 종착역이 바로 서브프라임이었던 것이다.

셋째, 그린스펀(정부당국) 방조설. 제조업기반을 다 빼앗기고,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미국경제를 먹여 살린 것은 금융이었다. 미국은 월스트리트의 잔치를 기꺼이 즐겼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FRB)의장은 재임시절 첨단금융거래의 위험을 자주 경고했다. 그러나 그 뿐. 그는 월스트리트에 감독과 규율 대신 과잉유동성(저금리)을 공급했다. 돈이 넘쳐 나는 IB들은 정치인들의 최대스폰서였고, 의회는 금융규제완화로 화답했다. 말로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속으로 곪아가는 부실은 누구 하나 챙겨보는 이가 없었다.

월스트리트의 붕괴는 이처럼 드라마틱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융은 결국 다시 살아날 것이다. PC는 더 고수익-고위험의 첨단 상품들을 만들어낼 것이고, 얼마 후면 인재들은 다시 IB의 문을 노크할 것이다. 하기야 17세기 튤립파동부터 오늘의 서브프라임까지 금융은 언제나 '거품과 붕괴(boom & burst)'의 반복이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해왔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래도 재앙은 재앙이다. 더구나 월스트리트는 금융강국을 외쳐온 한국에겐 엘도라도 같은 곳이었다. 메릴린치는 내년 시작될 자본시장통합법의 모델이었다. IB를 외쳐온 금융기관들, 특히 현 정부이후 규제완화만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온 금융당국은 월스트리트의 잿더미속에서 교훈이라도 얻었으면 한다.

이성철 경제부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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