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지난 12일, 정부 측은 "국제 금융시장 상황이 개선되면 언제든 발행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새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메릴린치 피인수 등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국제 금융시장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당분간 외평채 발행을 다시 추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연기가 아니라 사실상 중단이 된 것이다.
해외 채권 발행을 준비해왔던 기업과 은행들은 결과적으로 '정부'와 '월가'에 원-투 펀치를 맞고 녹아웃이 돼버렸다. 지금까지는 "금리만 조금 더 주면 해외 채권 발행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자위해왔던 기업들도 이제는 발행 계획 자체를 접어야 할 형편이 됐다.
16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유럽시장에서 5년 만기 한국 채권의 크레딧디폴트스왑(CDS) 프리미엄이 1.65%를 기록하며 전 거래일(1.38%)에 비해 무려 0.27%포인트나 급등했다. 연초(0.5% 수준)와 비교하면 세 배 이상에 달한다. CDS 프리미엄이 높다는 것은 한국 채권의 부도 위험이 높아졌다는 것으로, 해외채권 발행 시에 가산금리가 그만큼 오르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줄줄이 해외 채권 발행 계획을 취소하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주중 발행할 예정이었던 1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채권 발행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고, 우리은행도 하반기에 5억달러 가량 해외 채권을 발행하려고 했지만 전면 보류됐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연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예 외화 자금 조달을 포기하고 원화로 전환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가스공사는 당초 가스요금 보전용 운전자금 마련을 위해서 5억달러를 해외에서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원화 조달로 급선회했고, 한국전력 등 다른 기업들도 "굳이 해외 차입 여건이 악화된다면 원화로 조달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당장 달러 자금이 필요한 경우다. 정부는 이날 금융회사 등이 달러 자금이 부족할 경우 한국은행이 스왑 거래를 통해 외화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무한정 공급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달러 기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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