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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교육현장] <2> 정부의 승부수 기숙형 공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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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교육현장] <2> 정부의 승부수 기숙형 공립고

입력
2008.09.17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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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를 앞둔 12일 경기 연천군 전곡읍의 전곡고등학교. 명절을 앞둔 설레임에 또 하나의 설레임이 더해졌다. "저기 기숙사 보이시죠? 그 옆 쪽으로 저만한 걸 또 하나 지을 겁니다." 교무부장 이우남 교사가 전곡고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곡고는 지난달 말 '기숙형 공립고'에 선정된 경기지역 4개 고교 중 하나다.

"벌써부터 연천군 관내 뿐 아니라 동두천 의정부 등 다른 지역 중학생 학부모들로부터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어떻게 뽑느냐, 이 정도면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등을 주로 물어봅니다."

지난달 말 82곳이 선정된 기숙형 공립고는 이명박 정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첫 단추다. 농어촌 지역에 총 150개교를 지정, 교육 인프라를 개선해 도농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기숙형 공립고의 목표.

기숙사 수용 규모를 늘려 사교육비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의 고교 서열화 가속, 24시간 입시학원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지역 명문고 도약 기대

전곡고가 기숙형 공립고에 선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2003년 경기도교육협력사업인 '농어촌 중소도시 좋은학교 만들기' 사업을 유치해 지역거점 중심학교로 발돋움했다. 이때 지원받은 25억여원으로 124명 수용 규모의 기숙사 '예지원'을 지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수학생을 적극 유치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기숙형 공립고 선정으로 지원받는 50억원을 통해 지역 명문고 도약을 이루겠다는 게 전곡고의 복안이다. 이 교사는 "2005년부터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3명의 원어민 교사를 두고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며 "농촌 지역 학교에 이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실제 최근 몇 년 간 전곡고의 실력 향상은 뚜렷하다. 학년당 1명 정도였던 학업성취도 2등급 이상(농어촌 전형 서울대 및 연고대 안정권) 학생 수는 7,8명으로 늘었다.

이 교사는 "상위권 중학생 중 80% 이상이 타지 학교로 진학했지만 이제는 60% 이상을 우리 학교에서 흡수하고 있다"며 "지역 인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전곡고는 수년 내에 50% 이상의 학생을 서울 소재 대학 및 국공립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희용 교장은 "지역사회도 기숙형 공립고 지정을 환영하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며 "도시로 나가 큰 돈을 쓰지 않고도 여기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 소외 학교들 "우린 어쩌라고…"

같은 날 전곡고에서 10㎞ 가량 떨어진 경기 연천군 연천읍의 연천고등학교. 명절을 앞두고도 교사들은 쉽사리 웃음을 짓지 못했다. "올해는 또 얼마나 멀리까지 가서 중학생 졸업생들을 유치해올까 걱정입니다. 이러다 학교 문닫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윤두한 교사가 쓴웃음을 짓는다.

인근 전곡고가 지원에 힘입어 쑥쑥 성장하는 사이 연천고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1년 7개였던 신입생 학급 수는 현재 4개 학급으로 주저앉았다. 그마저도 매년 미달 사태다. 반면 전곡고는 지난해 1개 학급을 증설했다.

학생들이 겪을 좌절감은 더욱 가슴 아프다. 낙후 지역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선택과 집중'에서 배제된 아이들은 일찌감치 패배의식에 젖기 쉽다. "지금도 아이들이 그래요. 제가 전근을 가더라도 전곡고에는 가지 말라고…. 선생님 보고 싶어도 주눅이 들어 그 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기 양평군에선 양평고가 기숙형 공립고로 선정되면서 다른 학교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사립고인 양일고의 김동준 연구부장은 "힘들게 노력해 지역에서 선호도를 높여왔는데, 기숙형 공립고의 물량 공세로 이제 그 날개가 꺾이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설립주체가 사립이라는 이유로 배제되고, 일부 학교에만 지원을 몰아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기숙형 공립고의 미래, 명문고? 명문학원?

기숙형 공립고는 낙후된 농어촌의 교육을 되살린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기숙형 입시학원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를 씻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과도한 입시 위주의 수업을 방지하고, 인성교육, 예체능, 상담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전인교육이 실시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학부모나 지역사회의 요구 등을 감안하면 설득력은 떨어진다. 기숙형 공립고로 선정된 경기 양평고의 김창환 교사는 "이제 기숙학원들과의 경쟁체제로 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대규모의 지원을 받은 학교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성과라는 것은 소위 명문대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진학시키느냐 외에는 없다는 설명이다. 김 교사는 "또 한 번의 비교육적인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곡고의 이선진 교사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근본적인 교육환경을 바꿀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고 우수한 학생 들어오면 기숙사에 넣고 잘 관리해서 좋은 대학 보내겠다는 얘기입니다. 또 하나의 특목고, 입시기숙학원이 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현재도 농촌 고교의 기숙사에 입소하는 학생들은 거의 성적 순이다.

원거리 통학의 애로 해소 등 기숙사 본연의 역할은 없다는 얘기다. 메가스터디 손주은 대표는 "기숙형 공립고가 대형 입시학원들과 제휴해 입시에 유리한 학원식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소수의 선택받은 학교는 입시명문으로 성장을 계속하고, 들러리에 불과한 나머지는 도태되는 결말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에 선정된 82개교 중 62개교가 기존의 농어촌 우수고로 이미 지원을 받은 바 있는 학교였다는 점에서 농어촌 지역 고교의 '빈익빈 부익부'는 현실이 되고 있다. 양평고의 김 교사는 "농촌에서도 변두리에 있는 규모가 작은 학교들은 폐교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 자사고·마이스터고 등 다양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핵심은 기숙형 공립고 신설이 분명하지만, 자율형 사립고(100곳), 한국형 마이스터고(50곳) 등 다른 형태의 고교도 눈여겨볼 만 하다.

적성에 따라 골라갈 수 있는 다양한 학교를 만들어 선택의 폭을 넓힐 경우 사교육비도 자연 줄어들 것이라는 게 새 정부의 판단이다.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한 자율형 사립고는 밑그림만 그려진 상태다. 강원 횡성 민족사관고 등 현행 6곳의 자립형 사립고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될 전망이다. 정부는 자사고 법인 전입금을 낮추면 일부 학교가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자율형 사립고는 자사고와 운영 형태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또 다른 귀족학교', '명문대 진학을 위한 특권학교' 등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자율형 사립고 100곳에 기숙형 공립고 150곳, 기존 특수목적고 50여곳을 합하면 명문대 진학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특별한' 학교는 전체 일반계 고교 1,500여곳의 5분의 1에 이르게 된다.

이 때문에 입시 전문가들은 "특별한 학교의 문이 크게 넓어진다는 것은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정도에도 들어가지 못하면 안 된다'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이모(44ㆍ여ㆍ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현재 특목고는 상위 2,3% 학생들이 준비하지만, 이와 유사한 형태의 학교가 100개가 더 생기면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사교육의 팽창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심화한 형태의 기술고인 한국형 마이스터고는 전문계고가 겪고 있는 학생수 감소, 대학 진학 선호 등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기술 분야의 영재를 키우겠다는 두 가지 목적에서 출발했다. 기존 전문계고 700여곳 가운데 올해 20곳, 내년 30곳이 각각 지정된다.

정부는 시설투자 등 준비금 명목으로 학교당 25억원을 지원하고, 재학생들에는 기숙사를 제공하며 학비도 면제한다. 그러나 마이스터고 또한 전문계고 간 서열화, 진학 명문고로의 변질 등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연천=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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