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과일을 자르고 당숙모는 떡을 담는다. 머리 희끗한 어른들이 선산 문제를 논의한다. "종중 선산으로 법인등기를 해 뒀으니…" 시숙과 계숙씨가 정겹게 안부를 묻고 혼기 찬 질녀에게 지청구를 댄다. 어느 문중의 기제삿날 같은 풍경. 9일 서울 구기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놀라운 아버지> 와 <뜻밖의 개인사> (새만화책 발행) 출판기념회 자리다. 뜻밖의> 놀라운>
언뜻 만화처럼 보이는 두 권의 책은 조동환, 조해준 부자가 공동 작업한 드로잉을 수록한 작품집이다.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인 아들이 작업을 기획하고, 일흔넷인 아버지의 손으로 글과 그림이 완성됐다. 내용은 조동환과 그의 사촌형인 조일환의 삶.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비록 순응적이었으나 진솔했던 삶을 소박하고 담담하게 담았다.
"아버지와 소통이 많은 편이 아니었어요. 학창시절에는 아예 단절된 삶을 살았죠. 그러다 미술을 전공으로 삼으면서, 미술 교사이셨던 아버지의 삶에 궁금증이 생겼어요. 서먹한 대화가 시작됐고 그 대화가 공동작업에까지 이르게 된 거죠."
할아버지가 징용에 끌려가던 일, 전쟁의 사연, 이유없이 죽어간 목숨들, 호남고속도로 개통, 새마을운동을 기념하는 조각상 제작 등등. 아득한 세월 너머에서 바래지던 아버지의 기억은 아들의 기획 아래 도화지 속에서 다시 숨을 얻었다. 연필로 꾹꾹 새긴 그림과 글의 고졸한 맛은, 어린 자식에게 무언가를 그려주곤 하던 옛날 아버지들의 그것 같다.
'한 아버지의 삶'이란 부제가 붙은 <뜻밖의 개인사> 는 조동환의 사촌형인 조일환이 남긴 글을 바탕으로 한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방 전쟁 독재 민주화 등을 거대담론이 아닌, 개인의 삶을 통한 미시적 방법으로도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감상을 말했다. 조 교수는 조일환의 아들이다. 집안잔치 같은 이날 기념회에서도 조 교수는 '포스트 구조주의' 같은 용어를 늘어 놓고야 말았다. 그 모습이 왠지 철없지만, 또 정겹게도 느껴졌다. 뜻밖의>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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