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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자유로운 세계'

입력
2008.09.1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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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의 전작 '빵과 장미' '보리밭에 부는 바람' 등을 익히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자유로운 세계'의 도입부에 다소 당혹스러울지 모른다.

고지식하다 할 만큼 줄곧 못 가진 자와 피지배 계층, 노동자의 편에 서온 이 인텔리 감독의 신작이 악덕 인력중개업자의 개인생활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이면 로치의 세계관과 신념은 요지부동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야기는 영국의 한 싱글맘 앤지(키오스던 워레잉)의 부당한 해고를 출발점으로 한다. 남다른 기술도 자본도 배경도 없는 앤지는 친구와 그동안의 이력을 밑천 삼아 인력중개업체를 차린다. 그는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약점을 발판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며 착취의 중독에 빠져든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불법체류자의) 일자리를 찾아주는 거"라며 위안을 삼고, 정치적 탄압을 피해 이란을 탈출한 불법체류자의 가족에게 아낌없이 냉장고를 열어주는 앤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질과는 거리가 멀다.

로치는 자본가의 20세기적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기보다 세계화에 따른 노동의 소외, 성차별 등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신음하는 지구촌의 어둠을 조명한다.

영화 속 앤지의 회사 마크엔 큼지막한 무지개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관 안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삶엔 무지개가 뜰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장및빛 미래를 내세운 신자유주주의가 세상에 알록달록한 행복을 선사하기보다 잿빛 불행을 가져다 준다고 좌파 거장은 96분간 쉼없이 역설한다.

"그렇게 사람들 등쳐 먹고 너희들만 잘 살면 되냐"라는 아버지의 힐난에 대한 앤지의 답변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웅변한다. "(외국인 노동자들 덕분에) 소비자들이 웃고 있잖아요." "아버지는 30년 동안 한가지 일만 했지만 저는 30번이나 일을 바꿨다고요."

제목 '자유로운 세계'(원제 'It's a Free World')는 정리해고 등 부조리한 일들이 비일비재로 벌어지는 세상에 대한 풍자이자 실은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역설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이다.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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