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소 판 돈으로 아이들 공부시키던 것은 옛일이 되어 버렸다. 소 판 돈으로 자식 공부를 시켰다고 해서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팔 '소'가 없다. 때문에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지 않고서는 연간 천만 원에 육박하는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방법도 없어졌다. 통계청과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지난 60년간 주요 물가 중 가장 많이 오른 것이 대학등록금이다. 특히 자연계는 무려 62.3배나 인상됐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매년 신학기만 되면 투쟁의 악순환이 펼쳐진다. 붉은 글씨로 쓴 '임금 인상'이라는 머리띠를 이마에 두른 아버지는 투쟁 끝에 고작 4~5% 인상에 합의하고 머리띠를 풀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허리띠를 졸라맬 대로 졸라맨 어머니는 생활비를 더 내놓으라고 성화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은 끝없이 오르는 등록금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거나 가방을 멘 채 등록금 인하를 외치며 총장실을 점거하고 만다. 지난달에는 이러한 과정에서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대학생도 있었다.
연간 천만원대에 달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내고 그 빚을 갚기 위해선 또 다른 빚을 내야 한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시작한 자녀교육이지만 등록금 때문에 빚더미에 주저앉아야 한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공약 중 학부모나 대학생들의 최대 관심거리는 국가장학기금을 설치하고 맞춤형 교육지원시스템을 구축하여 가난때문에 공부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등록금 때문에 자식들이 학업을 중단해야 할 처지에 놓인 부모들에게 장학대출은 가뭄에 단비 같은 기쁜 소식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보증에 의한 대학생 학자금 대출사업은 민ㆍ관ㆍ학이 저마다 천편일률적으로 대출사업을 하다 보니 비효율적일 뿐더러 오히려 학생들 대상의 수익증대 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 임시방편적인 지원으로 수혜 학생 수는 급증했지만 높은 대출금리 때문에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각 대출기관은 앞 다투어 금리를 인상하고 대출 고객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가 보증하고 학자금 대출이자가 일반과 전혀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장기 고객확보가 가능하다는 제도적인 모순이 이런 현상을 낳은 것이다.
지난 5일 이명박 정부 출범 6개월을 맞이해 대통령 주재로 열린'제1차 생활공감정책 점검회의'에서 학자금 대출 이자를 현재 7.8% 수준에서 절반인 4.8%까지 낮추는 계획이 발표됐다. 제대로만 된다면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식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생을 위한 장학대출 사업이 합리적 평가 기준에 의해 최소의 부담으로 최대의 학습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서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제도를 성공적으로 확대해 가기 위해서는 중구난방식 지원대책을 유지할 것이 아니라 획일적인 기준을 벗어나 대학생 각자의 전공능력과 미래소득을 고려하는 맞춤형 학자금 지원방안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아울러 대출 기관들이 더 이상 학자금 대출사업으로 이자 수익을 올리지 못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기금관리를 일원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 6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한국장학재단 설립 등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률안이 이번 정기국회 회기 중에 통과되어 학부모들이 고금리 부담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 실질적으로 가계경제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는 두 팔을 걷어붙여야 할 것이다. 교육은 가장 기본적인 삶의 질을 좌우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최원호 한영신학대학교 겸임교수.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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