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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간 본성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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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간 본성에 대한 오해

입력
2008.09.1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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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에는 잠시라도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으면 불안해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과학기술은 과학사나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기 이전에 이미 우리 몸 안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과학은 생명을 설명하고 해석함으로써 그것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19세기 말에 도입되고 나치 독일에 의해 악명이 높아진 우생학이 대표적이다. 우생학은 인구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정신박약 조울증 등 유전병이 의심되는 사람뿐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나 범죄자들을 강제로 또는 임의로 단종시켜 후손을 남기지 못하게 하는 사이비 정치-과학 프로그램이었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오해

이른바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의 자연현상을 인간사회에 적용한 것인데, 경쟁에 강하고 생존에 적합한 개체만이 살 가치가 있다는 편향된 이데올로기가 과학의 가면을 쓴 것이었다. 하지만 적자생존은 자연현상을 관찰한 결과 도출된 하나의 가설이지 인간의 의지를 그렇게 작동시켜야 한다는 규범일 수는 없다. 최근의 진화생물학에서는, 개체들 사이의 경쟁이 진화의 주요 요인이기는 하지만 집단의 수준에서는 개개 구성원의 우수 형질보다 형질의 다양성이 오히려 집단 사이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지지를 받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도 진행 중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맹자 이래로 성선설이 정설로 굳어졌지만 이 논쟁이 과학의 옷을 입게 되면서 점차 성악설이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주로 <이기적 유전자> 라는 유명한 책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이 책은 그 영향력만큼이나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진화는 유전자가 더 많은 복제품을 남기는 쪽으로 진행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이기적 유전자라는 은유로 표현한 것인데 사람들은 유전자를 인간으로, 은유를 직접적 서술로 오해해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다'로 잘못 읽은 것이다. 여기서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과학 이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잘못된 규범으로 이어진 것이다.

20세기 초 우생학은 열등형질을 도태시키면 우수한 형질만 살아 남게 된다는 잘못된 이론을 인간사회에 그대로 적용해 벌어진 참혹한 인권유린의 씨앗이었다. 인간 본성의 선악 논쟁은 진화에 관한 이론을 잘못 해석해 벌어진 한바탕의 소동이다. 우리는 때와 장소에 따라, 상대방이 누구인지, 처한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이기적일 수도, 이타적일 수도 있다. 이기적으로 또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그 주변이 이러저러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쪽으로든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려 한다면 먼저 그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약자 배려 약한 이 정부의 정책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로 돈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게 될 감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정책은 오래 가기 힘들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새 정부의 여러 정책에서 감지되는 일관된 흐름을 읽어보면 그 본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추론할 수는 있다. 이 추론에 따르면 현 정부의 모든 정책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사회는 이기적 인간들이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각축장이다"라는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이런 전제 위에서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있을 수 없고 살 맛나는 세상의 비전도 없다. 지난 세기는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오해 또는 오용해 끔찍한 재앙을 불러온 시기이기도 하다. 부디 잘못된 과학으로 인간의 본성을 오해해서 삭막한 세상을 만들지 말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참세상의 비전을 보여주면 좋겠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ㆍ인문의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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