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을 앞두고 정치권이 또 한 번 블랙코미디를 썼다. “어려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추가경정예산안의 추석연휴 이전 처리를 다짐하더니 결국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만 벌이고 말았다. 명절을 앞두고 어깨가 쳐져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정치인들 하는 게 그렇지” 하는 체념만 안겨 줬다.
이번 사태의 하이라이트는 예결특위 의결이 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원천무효 시비에 휘말리면서 본회의 처리가 무산된 것이다. 한나라당이 제1야당인 민주당을 배제한 채 원조보수를 자임하는 자유선진당과 추경안을 강행 처리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여야 간 거센 비난전이 일고 향후 국회 파행이 불가피해졌는데 나중에 보니 의결정족수조차 채우지 않은 상황에서 의결을 했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집권 거대 여당으로서의 책임감이 제로에 가깝다는 혹평도 듣게 됐다. 여야 합의 처리가 어려워졌다고 판단해 강행 처리에 나섰다면 최소한 원내지도부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어야 할 텐데 의원도 제대로 모으지 못해 결과적으로 여권 전체의 정국 운영에 부담만 잔뜩 지우게 됐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예결위 개의를 50여분 앞둔 오후 11시께 의원총회를 열었을 때만 해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내친 김에 본회의까지 열자며 소속의원들의 출석 여부를 점검할 정도였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오후 9시20분께 민주당에 “합의가 안 되면 강행 처리하겠다”고 통보함으로써 민주당을 잔뜩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예결위가 열릴 때는 의결정족수가 부족해 편법적으로 의원을 대체 투입했다가 망신을 사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 대야 정치력도 이번에 바닥을 드러냈다. 홍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민주당의 민생 관련 예산 증액 요구에 잠정 수용했는데도 예결위원들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야당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빌미를 줬다. 여야 간 힘의 불균형 때문에 야권에서 ‘다수의 횡포’ 가능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나라당 스스로 국회 파행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원 구성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원내전략 기능의 취약함과 무원칙함을 그대로 노정시켰다. 협상이 막판에 몰리자 그토록 강조해 온 에너지공기업 지원항목 삭제 요구를 슬그머니 거둬들이면서 2조9,000억원이나 되는 증액 요구안을 제시한 것은 스스로 정치적 명분을 저버린 것이란 비판을 불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상당수 의원들이 원내지도부의 협상 전략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는 점은 내부의 의사 소통과 협상 추진 방식에 적잖은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다. 협상안에 대한 최종 점검을 위해 밤늦게까지 원내대표실에 머물렀던 한 의원은 기자들에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에너지공기업 지원항목을 삭제하지 않으면 추경안 처리에 협조할 수 없다던 협상 전략이 도대체 언제 바뀐 거냐”면서 “자기 편도 속이는 희한한 협상 전략”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국회 사무처의 눈치보기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나라당 소속 예결위원 사보임 과정에 절차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밝히지 않고 감추는 데 급급했다. 심지어 민주당 의원들이 확인을 요구하자 서류 접수 시각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정부 관료들만 영혼이 없는 게 아닌 모양”이라고 혀를 찼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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