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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교육현장] <1> 국제중에 목매는 학부모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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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교육현장] <1> 국제중에 목매는 학부모와 아이들

입력
2008.09.1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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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M초등학교 6학년 변은영(가명ㆍ12ㆍ여)양의 하루는 고되다. 변양은 학교에서 귀가하는 시간인 오후 3시가 되면 학원으로 직행한다. 오후 8시까지 월ㆍ수ㆍ금은 영어 토론(Debating), 화ㆍ목ㆍ토는 수학 심화 수업을 듣는다.

단순한 선행학습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변양은 중학교 2학년 과정인 '수학 8-가' 과목을 중학생 언니ㆍ오빠들과 함께 공부한다. 영어는 독도ㆍ광우병 논란, 고유가 문제와 같은 최신 시사 내용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눈다.

집에 돌아와서도 공부는 끝나지 않는다. 두시간여 동안 CNN 뉴스를 청취하고 청소년용 영자신문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 학원 숙제와 영어 일기 작성까지 끝마쳐야 자정 무렵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다. 6월 말 1년짜리 캐나다 영어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대입 수험생을 방불케 하는 강행군은 모두 코 앞으로 다가온 청심 국제중 입시 탓이었다. 하지만 변양의 어머니 김모(41)씨는 최근 딸의 입시전략을 수정했다. 서울에도 국제중 두 곳이 들어선다는 얘기를 듣고 한 번 도전해 볼만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서울은 전형요강이 청심 국제중만큼 까다롭지 않다"며 "기왕이면 통학도 가능하고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 지역의 국제중을 타깃으로 삼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 도입 계획이 발표된 지 한 달. "국제중 설립으로 인한 사교육 과열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시교육청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일선 교육 현장은 사실상 '초등학교 입시 부활' 쪽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 초등학교 선거까지 과열

초등학교 선거의 이상 열기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서울 도곡동에 사는 주부 박모(43)씨 아들(11)의 학교가 그렇다. 박씨는 지난 달 열린 학부모 모임을 떠올리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안건으로 나온 2학기 학급 반장 선거에 대해 학부모들이 "1학기에 학급 임원을 한 학생이 선거에 입후보 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린 것.

박씨는 "회의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임원 경력이 국제중 입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며 "서로에 대한 견제 심리 때문인지 경쟁이 훨씬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지역교육청이나 대학 부설로 만들어진 영재교육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모(45)씨는 최근 학교에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영재교육원 입학에 관한 문의를 했다가 면박만 당했다.

아이가 8살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아온 터라 학교장 추천을 받는 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게 착각이었다. 최씨는 "특목고와 국제중을 염두에 둔 지원자가 줄을 서 학급별로 인원을 할당했다고 들었다"며 "1차 전형일 뿐인데도 영재교육과 별로 상관없는 서류를 요구하고 다른 학부모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에 문을 열 국제중학교인 대원중과 영훈중은 영어인증시험 등 영어능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점수위주의 지필고사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올림피아드, 영재교육원 등을 부지런히 수소문하고 다닌다.

김은실하이멘토연구소 김은실 소장은 "국제중의 전형 특성상 다재다능한 학생들의 합격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학생부의 변별력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지원자에게 없는 특별한 장점을 갖추고 있어야 가산점을 받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유명학원 입학이 더 어려워

초등학교 4학년 조모(11)군은 요즘 일주일에 3번씩 40만원짜리 수학 과외를 받고 있다. 2주 뒤에 있을 H학원 영재반 레벨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조군의 어머니 권모(45)씨는 "학원의 도움 없이는 영재교육원이나 경시대회 수상 실적을 쌓기가 절대 불가능하다"며 "어찌보면 지금은 타고난 영재가 영재교육을 못 받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사교육이 사교육을 낳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형 유학 학원으로 유명한 강남의 G학원은 미국, 캐나다 등 유학반 수강생을 모집하면서 아예 국제중 대비용 유학반을 따로 모아서 운영하기도 한다.

학원은 평가가 세분화돼 있어 실력 측정이 정확하고, 약한 부분을 보충하게끔 다양한 틈새 특강을 마련해 학부모들을 유혹한다. 서울 목동에 사는 학부모 이모(41ㆍ여)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지역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이 난 WㆍS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위장전입이 비일비재했지만 지금은 학교 수준보다 좋은 학원의 문을 뚫기 위한 경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수학은 H학원, 영어는 J어학원 등 이른바 '물 좋은' 지역 명문학원의 수업을 들으려면 길게는 3개월을 기다려야 레벨 테스트라도 겨우 치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학원의 정보만이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는다. 학부모들은 영어평가를 안하겠다는 교육 당국의 발표에 코웃음을 친다. 엄모(47)씨는 "대원중이 국제중으로 전환되면 대원외고에 지원할 때 분명 유리할텐데 평범한 아이들을 뽑겠느냐. 학원에서도 내신 위주의 전형은 1,2년 내로 끝날 것이라고 귀띔한다"고 말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국제중 논란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재춘 영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제중 설립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국제중을 목표로 하는 학생ㆍ학부모의 눈높이가 외국어고, 명문대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 '국제중 신드롬' 학원들이 부채질

정부 정책에 대한 반응 속도를 따지자면 서울 강남 학원가는 단연 1순위에 꼽힐 만하다. 교육 당국이 아무리 새로운 교육 정책을 만들어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대비책을 알려주겠다며 수강생을 모집하고, 입시설명회 일정을 알리는 전단지가 학원가에 나돈다.

국제중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달 19일 국제중 도입 계획이 공개되자마자, 사교육 기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잇따라 설명회를 열며 학부모들을 끌어 모았다.

사교육 시장에서 국제중의 파급력은 얼마나 될까? 대원ㆍ영훈 국제중의 모집정원은 320명이다. 지난해 청심 국제중에 지원한 서울 출신 1,600여명이 모두 서울 지역 국제중에 도전한다고 가정하고, 국제중 신드롬에 편승한 수요를 최대한 감안해도 3,000명은 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사교육 시장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제중을 목표로 하는 학부모들은 대개 외국어고, 국제고 등 특목고 입학 가능성을 놓고 지원 여부를 저울질한다.

하지만 서울 지역 외고들은 내신 실질반영 비율을 최대 50%까지 높인 2009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을 내놓았다. 국제중이 외고 진학에 전혀 득이 될 게 없다는 얘기다.

하늘교육 임성호 이사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이 몰리는 국제중은 외고 진학 시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경제적 논리로 따져도 기껏 몇 천명 정도의 신규 시장을 '블루 오션'으로 삼기에는 무리"라고 지적했다.

일부 학원들의 공세적 마케팅은 '국제중 가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최근 1년간 대규모의 외자를 유치하며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린 몇몇 사교육 업체들이 돌파구로 국제중을 점찍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도끼눈 현상'이다. 한 학원 관계자는 "주식 상장 등 조건부 투자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반짝 호재라도 있으면 과도하게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사교육 시장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강희경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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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경쟁으로만 치닫는 교육

초등학교 3학년인 영훈(가명)이에게 지난 여름방학은 악몽이었다. 개학 직후 치러질 학교 수학경시대회 때문이었다. 방학 내내 학원을 다니고, 과외도 받고, 문제집도 10권이나 풀었다. 이 학교는 영재교육원 지원자 선정을 놓고 잡음이 끊이질 않자, 경시대회를 치러 상위 3%안에 들어야 교장 추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올해는 국제중학교 얘기가 나오면서, 경시대회가 유난히 치열했다. 영재원 경력이 국제중 입학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예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영훈이는 25%를 선발하는 1차 시험은 다행히 통과했지만, 며칠 전 치른 2차 시험은 자신이 없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새 정부 들어 초ㆍ중등 교육정책이 경쟁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국제중 설립, 영어공교육강화, 기숙형공립고신설, 고교선택제 도입, 일제고사 부활,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 하루가 멀다하고 내놓는 교육정책의 골간은 평가와 선발, 시험과 대회의 바늘구멍을 통과해야만 좋은 상급학교가 보장되는 적자생존의 구조다. 이러한 정책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상시 입시체제로 재편시키고, 서울 일부에 국한되던 고입경쟁을 전국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국제중 전형에서 시사토론과 리더십을 평가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대치동 학원들은 토론기술과 시사까지 주당 8시간씩 가르치는 국제중 대비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어린이회장 경력이 중요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에 새벽같이 학교 나와 청소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어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정부가 영어몰입교육을 폐기한다고 밝혔지만, 눈치 빠른 영어학원들은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실’까지 앞 다퉈 열고, 불안한 학부모들은 고사리손을 잡고 여기저기 학원을 기웃거린다.

정부는 ‘경쟁을 통해 공교육 경쟁력을 높인다’며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실은 이렇듯 사교육 비대화, 교육 양극화만 초래하고 있다.

농촌 등 지방 고교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최근 82개의 기숙형공립고를 지정하면서, 지정되지 못한 학교 교사들은 “안 그래도 주눅든 학생들이 패배의식을 갖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서울 한 중학교 교사는 “300개 우수학교를 만들면, 전국 고교 5개 중에 1개는 좋은 학교, 4개는 나쁜 학교가 되는데, 누가 나쁜 학교 교복을 입고 싶겠나”라고 반문했다. 일제고사 부활 역시 교육 수요자들에게 ‘저 학교는 가면 안돼’라는 인식만 심어줘 학교 서열화만 심화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서울대 신종호(교육학) 교수는 “교육정책과 관련한 논란은 보수냐, 진보냐 이념적 문제가 아니다”며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시장경쟁의 적자생존 논리만 교육에 들이대며 한국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핀란드 교육체계를 연구중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삼호 연구위원은 “학업성적은 인적자본 경쟁력에 있어 일부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너무 지나친 학업 경쟁을 줄여야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키소와 모차르트가 될 수 있는 아이조차 죄다 수학경시대회에 내보내는 경쟁구조로는 세계와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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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부 교육정책 무엇이 달라졌나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간의 교육정책 기조를 뒤흔드는 새로운 정책들을 쉴새 없이 내놓고 있다.

우선 초등생들의 영어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초등 3~6학년의 영어수업시간이 확대되고, 재량활동과 방과후수업을 통해서도 영어학습이 강화된다. 또 대통령까지 나서 없던 일로 하겠다던 영어몰입교육은 일선 학교와 학부모들을 영어교육에 더 몰입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1개 초등학교를 연구학교로 운영하고 있을 뿐 몰입교육을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32개 초등학교가 몰입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생들의 입시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교과부는 글로벌 인재 육성을 목표로 내년 3월 서울 대원, 영훈중 등 2곳을 국제중으로 전환하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을 허용하기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1단계 학생부를 중심으로 한 서류전형에서 모집정원의 5배수, 2단계 개별면접과 집단토론을 통해 3배수, 3단계 추첨을 통해 정원을 뽑는다는 계획이다.

고교 평준화가 사실상 전국적으로 해체되면서, 고입 경쟁 역시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2년까지 이른바 우수고교 300개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달 비평준화 지역 82개 고교를 기숙형공립고를 지정하는 등 2011년까지 농산어촌 우수학교를 중심으로 150개의 기숙형공립고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들 학교는 교육과정, 학사 운영 등에서 자율성을 보장 받게 되며 교장공모제, 교사초빙제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우수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또 2011년까지 미래형 직업분야 전문고교인 마이스터고 50개를 만들고, 2012년까지 자율형 사립고 100개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들 우수학교로의 쏠림현상이 가속화하면서, 고교서열화가 심화할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특히 서울의 중학교 2년생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0년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고교에 지원할 수 있는 고교선택제가 실시된다. 2단계에 걸쳐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를 최대 4곳까지 지원할 수 있다.

서울 전체 고교를 대상으로 2곳을 골라 지원하는 1단계에서 20~30%의 학생이 배정되고, 거주지 학군의 2개교를 선택해 지원하는 2단계에서 추가로 30~40%가 배정된다.

2단계에서도 배정 받지 못한 학생은 거주지 및 인접학교를 합친 통합학군 내에서 강제 배정된다. 학교선택권을 높인다는 취지이지만, 강남 명문고 등 특정 학교로의 쏠림 가능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 4월 교과부가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함에 따라 일선 학교의 입시체제화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는 '0교시' 수업, 우열반 운영, 심야보충수업, 수준별 이동수업, 고교 사설모의고사 등을 허용하고 사교육업체가 방과후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등 29개 학사운영 지침을 한꺼번에 풀었다.

교과부의 발표 직후 학교를 학원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자 시도 교육감들이 나서 이중 '0교시'와 우열반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5월말 서울시교육청 조사에서 서울 12개 고교가 '0교시'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초중고 일제고사도 올해 부활된다. 교과부는 초6, 중3, 고1을 대상으로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 등 5개 과목에 대한 일제고사를 매년 10월 실시하고, 2010년부터는 학교별 평가결과를 공개하기로 했다.

학생들을 우수학력(80% 이상), 보통학력(80%미만~50%이상), 기초학력(50%미만~20%이상), 기초학력미달(20% 미만) 등 4등급으로 나눈다는 방침이다.

학교별 성적공개는 보통학력이상,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등 3개 등급에 속하는 학생 비율을 공개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사실상 전국적으로 초중고 평준화를 해체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절망하는 학부모

서울 목동에 사는 이모(44ㆍ여)씨.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두고 있는 그는 한 달에 두세 번은 다른 엄마들과 만나 정보를 교환한다. 첫째 아이 초등학교 시절 형성된 모임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국제중이나 자율형 사립고는 발등에 떨어진 불인데도 교육당국이나 학교에서 도대체 교육제도에 대해 제대로 부모들에게 알리는 게 없다"고 성토했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파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얘기다. 이씨는 "모임 하나 없는 엄마들의 심정도 답답하겠지만 알아도 참 힘들다. 교육제도 바뀌는 거 따라가기 바쁘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용돌이치는 교육정책을 따라잡느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 우리나라 학부모들에게도 이명박 정부 들어 급변하는 교육정책은 위기로 다가온다.

중학생 딸을 둔 이모(45ㆍ여ㆍ서울 강서구 염창동)씨는 "특색을 살려 자율형 사립고 100개를 만든다지만 결국 예체능보다는 인문계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학교마다 전형 방법이 달라지면 지금보다 더 큰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고 일어나면 등장하는 새 학교와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보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과거 경험에 근거한 예단으로 이어진다. 목동의 이씨는 "국제중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여론이 대세"라고 단언했다.

염창동 이씨 역시 "엄마들은 대부분 고교선택제가 추첨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시행 초기야 모르지만 결국 성적이 반영되지 않겠냐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그나마 정보 접근이 용이한 일부 학부모들도 고민이지만, 고민이 아닌 절망을 마주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는 점도 문제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유모(42ㆍ여ㆍ서울 도봉구 창동)씨는 "얼마 전에 아이가 말해줘서 고교선택제가 추첨이라는 것을 알았고 학구 변경도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며 "가게를 하기 때문에 정보도 늦고 학원 보내는 것밖에 해주는 게 없어 아이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 손놓은 일선학교

정부가 공교육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잇달아 새로운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선 학교들은 "정상적인 공교육 체계에서는 수용할 수 있는 정책들이 아니다"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일선 중학교 교사들은 정부의 자사고 등 300개의 우수고교 설립 추진 계획에 대해 "진학지도는 학생들이 알아서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특별한 변화가 있을 게 없다고 했다.

서울 강북구 C중학교 김모 교사는 "고교 입시에 대비하기 위해 학교를 입시학원으로 바꿀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인문고 지원자는 야간자율학습 시키고, 예체능 고고 지원자는 학원으로 보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교들 역시 영어공교육 강화와 국제중 설립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다. 서울 마포구 한 초등학교 교장은 "왜 영어몰입교육을 안 시키느냐고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고, 아이들 영어수준이 천차만별인데 학교가 영어교육 시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하는 학부모도 있다"면서 "학교로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은 서울 강남과 목동의 초등학교들은 학교 내 각종 포상, 영재교육원 지원자 선발, 반장과 어린이회장 선거 등의 공정성에 대해 학부모들의 항의와 학부모들간 다툼이 끊이질 않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선 고교 교사들도 고교선택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 A고 정모 교사는 "우수 학생들이 상위대학 진학률이 높은 강남으로 몰려갈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단기간에 학교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 없어 걱정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초구 B고 송모 교사는 "학력이나 생활수준이 낮은 다른 지역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일단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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