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책 중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이슈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공기업 개혁 역시 그렇고 그 중심에 민영화 논의가 자리잡고 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올해 초 인수위 시기부터 공기업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고 공기업 선진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는 하나 미미한 실정이다.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를 주장하는 정부 쪽에서는 영국을 비롯한 성공한 국가의 특정 산업을 예로 들며 추진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고,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은 실패한 사례들을 들며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어 각자 아전인수 격인 양상이다.
이러한 논쟁은 민영화에서 만큼은 큰 실익이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신뢰문제인데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난 우리 경제의 9월 위기설에 시장이 반응하는 것은 그 동안 정부정책이 제대로 시장에 먹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의 국제경기 침체와 국내 경제상황의 악화는 각종 정부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아닌 것은 사실이나 오히려 역설적으로 보면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동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의미로 보면 공기업 개혁은 정부 의지대로 추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 초기부터 불어 닥친 쇠고기 파동 이후 정부는 시장의 신뢰를 상실하여 더 이상 민영화를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듯하다. 참여정부의 여론정치를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면서 질타하였던 국민들은 이제 이명박 정부가 그 전철을 밟고 가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
공기업 민영화는 정부 인력 체계, 재정 경제 정책, 노사관계, 고용문제 등 정부의 각종 정책이 시장에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정권 초기 개혁정책의 신호탄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공기업 시스템을 그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고 그래서 정부의 어려움도 있는 듯하다. 몇 개 공기업의 기능 조정과 숫자 채우기 식으로 나열된 앵무새형 공기업 개혁은 안 된다. 영국이 20여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대대적인 공공부문 민영화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한 것과 비교하면 우스운 일에 불과하다.
공기업 민영화 추진이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이 정부는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정부의 민간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시장이 얼마나 반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권초기 민심 이반과 함께 시장의 신뢰상실을 국회가 개원하면서 회복해 보고자 하는 것인데 매우 힘이 들어 보인다. 정책과 정책들 간에 매끄럽게 연결되는 세련미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 살리기에 발목이 잡혀 환율 급등과 물가상승, 가계 금융부채 증가가 계속되는 사이 정부는 방향을 잃고 국민의 정책불신감만 커지고 말았다. 정권출범 이후 너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요즘 국민들의 생각이다.
공기업 개혁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나 그 개혁에 대한 철학과 이념이 분명해야 한다. 정권 초 매번 등장하는 통과의례식 개혁의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며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인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들의 지지와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효율적인 추진 또한 가능해진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이 선진화 구호로 잘 연계되지 못하면 국민들은 오히려 더 실망할 수도 있다. 작은 정부 구현은 그만큼 어려운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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