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남들은 시댁 스트레스로 병을 앓는다는데 저는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우선 교통체증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시댁이 저희 집에서 불과 2시간 거리인 부산이어서 명절 도로전쟁을 구경만 할 뿐 실감하진 못한답니다. 두 번째는 음식장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부산에 계신 시댁 형님들이 서로 상의해 각자 맡은 음식을 준비하지요.
큰형님은 각종 나물과 찜요리, 탕을 준비하고, 둘째형님은 생선과 건어물을, 셋째 형님은 각종 전을 준비하십니다. 막내인 저는 제일 멀리 있다는 이유로 과일과 건과류만 준비해 갑니다. 그러니 하루종일 기름냄새에 찌들려 씨름할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명절은 그야말로 보름달처럼 기쁨만 둥그렇게 꽉 찬 연휴가 됩니다. 음식준비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니 남는 것은 시간 뿐입니다. 함께 송편을 빚고, 가위바위보로 편을 갈라 하얗게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윳놀이나 동양화 공부를 하고, 다음 날 차례를 지내고 나면 16명 대부대가 모두 동네 찜질방에 가 땀 흘리고 돌아옵니다.
참, 추석선물 에피소드를 얘기하려다 딴 데로 빠졌네요. 시부모님은 몇 년 전 타계를 하셔서 저희 가족의 대장은 흰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큰시아주버님입니다. 장난기가 가득하시고 정이 많은 분이어서 명절 때마다 가족을 깜짝 놀라게 하십니다. 지난 설엔 모양이 똑같은 양말을 모두 16족을 준비하셔서 선물로 나누어 주셨어요. 모두가 깔깔거리다 숨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포장지 위에 적힌 별명 때문이었어요. 형제들에겐 코흘리개 시절의 별명이 적혀있었습니다.
둘째 아주버님은 잘 삐져서 '삐돌이', 셋째 아주버님은 코를 잘 흘려서 소매자락 콧물로 마를 날 없다 해서 '끈끈이'(사실 아주버님들 중에서 가장 멋쟁이셔서 그런 별명은 상상을 못했습니다), 우리 남편은 '곰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또 큰 형님에겐 약간 아부성있는 '미모의 카리스마 곽', 뚱뚱한 둘째 형님은 '오만평 유여사', 눈이 작고 재미있는 셋째 형님은 '웃기는 단추구멍', 그리고 제겐 '초삐 덜렁이'라는 별명을 주셨습니다.
제가 예전 아주버님들과 술 마시며 '원샷'하다 기절해버린 일이 있었거든요. 다음 날 우린 똑 같은 양말을 신고 조상님 앞에 쪼로록 서서 절을 올렸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답니다.
작년 추석에도 어김없이 행복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차례를 지낸 뒤 아주버님이 등산 갈 채비를 하라더군요. 점심을 준비해 집 뒤에 있는 장산에 올라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20분쯤 걷다 보니 작은 체육공원이 나타났습니다. 여러 운동기구가 갖춰진 그 곳에 서 큰아주버님은 "여기다 보물쪽지를 숨겨놓았으니 하나씩 찾아오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명절날 웬 보물찾기? 또 무슨 일을 꾸미셨을까 하고 생각하는 동안에 저쪽에 계신 '미모의 카리스마 곽'여사님과 '오만평 유여사'님은 벌써 아이들을 앞세우고 여기저길 찾기 시작했습니다. 질세라 모두 체육공원을 뒤졌습니다. 운동 하시던 몇몇 분들의 표정은 '저 사람들 뭐야? 혹시 간첩 아냐?'는 듯 보였지요. 20여분 지나자 여기저기서 "찾았다" "나도 찾았다"하는 외침들이 들려왔습니다.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큰아주버님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시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소나무 가지 위에서 하나, 윗몸 일으키기 운동기구 판 밑에서 하나, 지압하는 돌 틈 사이에서 하나, 수돗가에서 하나… …, 총 20장을 숨겨놓았다 하시는데 찾은 건 17장 정도였습니다. 못 찾았다고 우는 꼬맹이도 있었고, 한 손에 4~5장을 쥐고 흔드는 조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펼쳐 본 보물쪽지에 적힌 거라곤 1, 2, 3…이라는 번호뿐이었습니다. 찜질방 다녀와서 저녁시간에 보따릴 풀겠노라는 아주버님 말씀에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답니다. 상큼한 산바람에 계곡 물소릴 들으며 늦은 점심을 먹고 모두 근처 찜질방으로 갔다가 큰 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들 눈이 빠져라 그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기대하던 보물찾기 상품발표시간이 되자 아주버님이 입을 여셨습니다. "내가 이 시간까지 기다리게 한건 그리운 얼굴 좀 더 오래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치고 박고 울고 웃으며 자란 내 형제들과 예쁘고 고마운 제수씨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저 꼬맹이 조카들을 근 반 년 만에 만나 하루보고 보내기엔 너무 아쉬워 좀 더 오래 보고자 하는 욕심이었으니 이해 바랍니다."
아주버님 말씀에 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사실 즐거운 명절 시댁나들이라고 하면서도 차례 지내기 무섭게 얼른 짐 싸서 올라오기 일쑤였던 일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돌아가신 시부모님 심정도 큰시아주버님과 같지 않았을까 하는 짠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숙연함 뒤에 아주버님은 리스트와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불려지는 번호에 따라 선물을 나눠 받았습니다.
1번은 10만원, 2번과 3번은 5만원, 그 외는 만원과 오천원권…, 돈 앞에 장사 없다고 옹기종기 모인 16명 가족은 모두 눈이 반짝반짝해졌습니다. 정말 긴장되더군요. ㅋㅋ…. 덕담과 함께 용돈들을 받고 서로 박수 치고 축하 해주고…, 작지만 아주버님의 재치와 마음이 담긴 용돈을 받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답니다. 창문 밖의 둥그런 달도 우리 가족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듯 했구요. 참, 일등 10만원은 누가 가져 갔느냐구요? 바로 '웃기는 단추구멍' 셋째 형님 몫이 됐습니다.
큰 댁을 나설 때 아주버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우리 가족 보물찾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앞으로 쭈욱~~!"
그런 아주버님을 위해 늘 받기만 해오던 제가 이번 명절엔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몇 년 배운 퀼트 솜씨로 만든 모자를 선사하려구요. (이건 비밀인데, 우리 큰아주버님 별명이 '돌문어'시거든요. 이마가 훤하세요. ㅋㅋㅋ)
경북 구미시 지산동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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