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로 불리며 부동산 가격 하락기에도 꿋꿋하게 위용을 뽐내던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의 마천루들이 체면을 구기고 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 18억원을 호가하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매매가격이 5억원 가량 급락하는가 하면, 감정가 48억원짜리가 33억원에 낙찰되는 '굴욕'을 당하고 있다. 경기 침체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채광과 환기가 불편한데다 상류층도 부담을 느낄 정도로 전기료 등 관리비가 비싼 탓이다. 지나친 거품이 빠지면서 가격이 정상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초고층 주상복합이 즐비한 경기 분당 정자동의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17억8,000만원에 팔린 파크뷰 54평형 물건이 올해 5월 14억5,000만원에 거래된 것을 시작으로 최근 시세를 밑도는 물건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며 "이마저도 매수세가 거의 없어 가격은 더욱 떨어질 것"이라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파크뷰는 분당 지역 주상복합의 시세를 주도하는 곳이다.
정자역 인근 S공인 관계자는 "파크뷰는 2004년 입주 당시 3.3㎡(1평)당 가격이 일반 아파트의 두 배 가량인 2,000만원 중반 선이었으나, 올해 초 3,500만원까지 수직 상승해 왔다"며 "초고층 주거시설에 대한 선망이 엄청난 거품을 낳았지만, 그 동안 수요가 한정된 탓에 일반 아파트 가격이 내려도 초고층의 거품은 빠지지 않고 되레 상승하는 등 일반 아파트 가격 변화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비록 일반 아파트에 비해 늦긴 했지만, 이제서야 거품 붕괴가 본격 시작됐다는 것이다.
금리 압박에 경매 쏟아져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많이 사는 서울 강남권의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경매 법정에 쏟아지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강남의 B공인 관계자는 "금융권 대출로 주상복합아파트를 구입한 사업가들이 경기 침체로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면서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 5월 송파구 신천동의 주상복합아파트 '롯데캐슬골드' 243㎡(73평)형이 경매법정에 나왔고, 7월에는 국내 최고가 주택단지인 강남구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156㎡(41평)형이 경매에 붙여졌다"며 "이들 아파트가 2005년 12월과 2004년 5월에 입주한 뒤 2년 반,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경매 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권 3개구의 감정가 10억원 이상 고가아파트 경매건수는 6월 41건에서 7월 44건,8월 54건으로 늘어난 반면, 낙찰가율은 6월 80.1%에서 7월 78.1%,8월 76.3%로 떨어졌다. 신천동 롯데캐슬골드의 경우 5월 경매 당시 매수자가 나서지 않아 두 차례 유찰된 끝에 8월 33억4,320만원에 낙찰됐다. 감정가 48억원의 70%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살아보니 '아니올시다'
그 동안 초고층 주상복합은 도심에 자리잡아 교통이 편리하고 다양한 편의시설과 빼어난 조망을 갖췄다는 점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생활해본 사람들은 일반 아파트보다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분당 정자동의 A공인 관계자는 "최근 나오는 매물의 태반은 그 소유자가 50, 60대 이상 노인들"이라며 "이들은 일반 아파트에 비해 현저히 적은 녹지공간에서 오는 답답함과 채광ㆍ환기 등의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상복합아파트는 대부분 승강기 통로를 중심으로 빙 둘러싼 구조적 특성상 자연 통풍이 불가능한데다 미관을 이유로 보온에 취약한 통유리를 외벽에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기 마련이다. 강남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한 주부는 "환기가 잘 안 되는데다 봄, 가을에도 집안이 무더워 에어컨을 켜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전기료만 월 100만원 이상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A공인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서판교의 고급빌라나 연립주택으로 옮기려는 수요가 상당하기 때문에 초고층 주상복합 매물은 계속 나올 것"이라며 "약한 매수세를 감안해 일찌감치 내놓은 물건도 많지만 문의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초고층 주상복합의 가격 하락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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