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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순 효부상' 딘티덩씨의 추석맞이/ "효부 베트남댁 마당에 3각 희망이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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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순 효부상' 딘티덩씨의 추석맞이/ "효부 베트남댁 마당에 3각 희망이 떴습니다"

입력
2008.09.1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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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벌어 잘 살면 좋겠고… 다른 거보다 우리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낯선 땅에 시집 와 세 번째 추석을 맞는 ‘월남(베트남)댁’ 딘티덩(23)씨. 한가위 소원을 묻자, 소문난 효부(孝婦)답게 시어머니 양복순(77)씨의 만수무강(萬壽無疆)부터 챙긴다. 딘씨는 올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에서 주는 ‘배용순 효부상’을 받았다. 양씨는 맞장구 치듯 며느리자랑을 내놓는다. “전주 사는 큰 아들이 막둥이(딘씨의 남편) 장가도 보냈으니깐 이제 우리랑 살자 하지만 요렇게 재미나게 살라꼬 하는 효부가 있는디 거긴 왜 가.”

10일 오후 전북 부안군 옹중리 중리마을. 마을 어귀에서 만난 어르신들께 딘씨 가족의 집을 물었다. 김춘민(69)씨는 “아, 그 얌전하고 착한 월남 새댁, 정말 요즘 한국 며느리보다 낫당께” 하며 한바탕 칭찬을 늘어놓은 뒤 집을 일러준다.

딘씨는 2006년 4월 2급 지적장애인인 오현모(46)씨와 결혼했다. 오씨가 벽돌공장에 다니고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지원도 받지만, 딘씨는 한 푼이라도 살림에 보태려 부지런히 밭일을 다닌다. 하도 억척스럽게 일해 이 집 저 집 밭일에 불려다니느라 바쁘지만, 방 두 칸짜리 집안 구석구석을 깔끔하게 정돈해 놓은 데서 딘씨의 여문 살림솜씨를 읽을 수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 여느 며느리들처럼 ‘명절증후군’은 없을까. 딘씨는 “힘든 건 하나도 없다”며 남편의 4남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추석이 되레 기다려진다고 했다. “장 보고 음식 많이 만들고 차례 때문에 바쁘지만 혼자가 아니고 형님이랑 어머니가 있으니까….” 한국살림 3년에 차례상 준비도 풍월 읊듯 척척이다. “송편요? 속은 깨 땅콩 넣고. 고짜리 등 나물 준비하고….”

넉넉지 못해도 단란한 딘씨네, 특히 고부간의 지극한 사랑에 칭찬이 자자하다. 부안종합사회복지관의 오수진(36)씨가 들려준 일화 하나. “뙤약볕이 내리쬐던 8월 어느 날, 허리가 기역자로 휜 양씨 할머니와 딘씨가 부안읍 언덕을 넘고 있었죠. 행여 어머니가 넘어질새라 허리를 안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는 딘씨의 뒷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물이 나더군요.” 오씨는 “양씨 할머니도 늘 ‘며느리를 아끼고 내가 본보기를 보이면 따라 하겠지, 저는 얼마나 힘들겠나’라고 하신다”고 전했다.

딘씨네 안방에는 2006년 10월, 결혼 6개월 만에 복지관의 도움으로 올린 전통혼례식 사진이 걸려있다. 백마를 타고 신부를 맞는 남편 오씨의 얼굴이 해맑다. 요즘 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 빠져있다는 딘씨는 “남편이 내 운명이죠”라고 수줍게 웃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기자를 배웅한 딘씨는 다시 밭으로 향했다.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핀 마당에서 “할머이” “(아)빠빠”를 부르는 두 살 배기 딸 혜정이의 머리 위로, 한가위를 앞둔 달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딘씨네의 희망을 담은 듯 차고 있었다.

부안=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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