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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한가위 "이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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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한가위 "이맛이야"

입력
2008.09.1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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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 닭찜… 쫀득 송편… 달콤 배숙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 명일 쇠어 보세

신도주 오려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 갈 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초록 장옷 반물치마 장속하고 다시 보니

여름 지어 지친 얼굴 소복이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조선 말기에 불렸다는 '농가월령가'의 한가위 구절을 읊조려 본다. 송편, 박나물, 토란국 등 입맛을 다시게 하는 초가을 먹거리가 줄줄 나오니 흥미롭다.

'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 갈 제'라는 구절을 시작으로는, 옛날 며느리들의 고된 시집살이가 절절. 잠깐 휴가를 받아 친정 갈 날만 기다리며 궂은일은 도 맡아 했던 며느리들이 지금 우리의 할머니요 엄마들인 것이니, 시대를 잘 타고 '모던한' 시어머니를 만나 추석이 와도 그저 맛난 거 먹을 생각부터 하는 나의 처지가 새삼 감사하다.

▲ 닭찜

이맘때가 사실, 햇닭이 딱 좋을 만큼 살이 오르는 계절이라 옛날 서울 사람들은 간장 소스에 오래 두고 쪄낸 닭찜을 한가위에 먹었다.

서울 음식 이야기를 하자면 건너 뛸 수 없는 내 외할머니의 방식은 사실 재현이 불가능하지만. 할머니는 불을 피우고 무거운 솥을 낮게 걸어 닭을 익혔다는데, 간장에 갖은 야채와 당을 더해 달콤하게 양념해서 연신 끼얹어가며 뭉근하게 익도록 했단다.

그야말로 정성이 한 자루. 나는 게으른 현대인이라 불 대신 오븐을 사용한다. 그리고 명색이 '프랑스 요리 전문가'니까 닭찜을 살짝 변형하여 준비해 본다.

'꼭 오 뱅(coq au vin)'이라고, 프랑스의 대표적인 가정 요리인데, '닭을 와인에 담가 맛을 낸' 정도의 뜻을 가진 메뉴의 이름답게 조각낸 닭을 감자, 당근, 양파, 대파와 한 병의 와인에 재우면 준비 끝이다. 물론 생수보다 값 싼 요리용 와인이 있는 프랑스에서만 가능한 메뉴이지만.

나는 '꼭 오 뱅'과 '서울식 닭 찜'을 반반 섞어 요리한다. 마트에서 찾을 수 있는 1만원 이하의 와인을 3분의 1 정도 닭의 잡냄새를 줄이고 향기를 더하는 용도로 넣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두었다가 완성된 닭요리에 한 잔씩 곁들인다. 와인과 간장을 섞으려면 레드 와인 보다는 화이트 와인이 간장과 덜 부딪힌다.

달착지근한 화이트 와인, 외국 브랜드나 '마주앙' 같은 국내 브랜드 어느 것이나 좋은데, 간장과 섞으면 향기롭다. 여기에 모자란 맛은 황설탕과 참기름, 통후추 정도로 보완. 더 입에 붙는 맛을 원한다면 우스터소스를 살짝 가미해도 좋다.

실제로 음식점에서 만드는 양념 갈비나 양념 닭찜에는 우스터소스, 콜라 등 양념의 색과 맛을 더 진하게 만들어주는 비밀 재료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살짝 이용하는 것이다.

▲ 오려송편

본디 한가위에 송편을 먹었던 이유는 갓 수확한 재료들을 조상께 선뵈는 이유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햅쌀과 햇콩, 햇밤으로 빚어내야 그 뜻이 산다.

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벼가 '올벼'인데, 이렇게 일찍 익은 쌀 즉, 올벼의 쌀을 빻아 만드는 것이 송편이라서 추석에 먹는 송편은 '오려송편'이라 구분하여 불러 왔다. 송편 빚기가 빠진 추석은 추석이 아니라는 생각, 이제는 몇 사람이나 하려나 모르겠다.

특히 서울에 살다 보면, 이 집 저 집은 고사하고 모녀나 고부가 모여 떡 빚을 여유조차 쉽지가 않다. 친정은 이북집이라 추석에도 어김없이 만두를 빚어 냈는데, 우리 집에서는 떡 잘 빚는 사람보다 만두 야무지게 빚는 사람을 더 쳐줬다.

나는 어릴 적부터 손이 작아서 만두를 빚는 족족 모양이 이쁘게 나왔는데, 할머니는 "재은이가 나중에 이쁜 딸을 낳으려나 보다" 하시었다. 아직 자식을 낳아 보지 않아서, 정말 떡이나 만두를 잘 빚으면 잘난 새끼를 낳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송편은 지방마다 빚는 모양이나 맛이 조금씩 다른데, 나는 특히 전라도의 '모시송편'이 흥미롭다. 모시 잎을 빻아 넣어 새파란 빛이 도는 모시송편은 쌉싸래한 향기가 감칠맛을 살리는데, 전남 영광의 특산품이기도 하다.

▲ 배숙

'배숙'은 고급스러운 한국식 디저트다. 배를 단 맛이 나도록 푹 익혀 생강 물에 띄워 주는데, 오랜 전통주인 '이강주'의 역사와 효능이 말해주듯 배와 생강의 조화는 언제 먹어도 조화롭다. 우리 배는 단단한 맛이 있어서 한 번 익혀도 설겅설겅하니 씹는 맛이 남는데, 서양 배로는 이룰 수 없는 질감이다.

모과처럼 생긴 서양 배는 우리 것보다 달고 물컹하다. 프랑스에서는 서양 배를 와인에 졸여 차게 식혀서 후식으로 내는데, 처음 그 조리법을 접했을 때 배숙과 닮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배숙은 깊은 맛을 내야 하는 수정과나 밥알 띄우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식혜를 대신하며 만들기도 수월하니, 나 같은 '날라리 며느리'에게는 고마운 메뉴다.

배를 익힐 때 통후추를 박아 은은하고 맵싸한 향이 배에 스며들면 생강으로 낸 물과 잘 어울린다. 배를 담백하게 익히고, 생강 물에 꿀을 더한 '차가운 생강 꿀 차'에 띄워 낸다고 생각하면 새내기 주부도 도전할 수 있다.

'물가가 너무 올라 그냥 먹을 배도 없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배숙을 만들어 생강 물 한 컵씩에 요만하게 썬 배 한 쪽을 띄울 생각을 해 본다면 후자가 훨씬 여럿이 즐길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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